[다산 칼럼] 헌정질서가 중요한 이유

입력 2016-12-20 17:30   수정 2016-12-21 06:46

"헌정질서는 정치질서의 기본 틀
헌법을 무시하면 조화로운 정치 공동체 불가능

헌법규칙 통해 실현할 이상은 자유시장·법치·작은 정부가 핵심

광장의 민심은 단기·편파·감정적…정치적 이기심·지적 자만 억제해야"

민경국 < 강원대 명예교수·경제학 >



차기 대선의 야권 유력 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만큼 헌정질서를 무시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 정치인도 드물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전후로 대통령의 전권 포기, 즉각 하야 등 거친 말을 쏟아내고 있다. “탄핵이 기각되면 다음은 혁명밖에 없다”는 그의 주장은 피를 부르는 반(反)헌법적 태도다.

문재인 전 대표의 발언을 주목하는 이유가 있다. 헌정질서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그의 지적 수준 때문이다. 헌정질서는 자유권, 선거제도, 의회 구성, 과세·예산규칙 등 헌법규칙으로 구성돼 있는 정치질서의 기본 틀이다. 그 틀 내에서 정치적 선호를 추구하는 정치인 관료 시민 등 정치 참여자의 상호관계가 형성되고, 이를 통해서 입법·경제정책 등 정치적 의사결정이 형성된다.

주목할 것은 헌법이 필요한 이유다. 300년 전에 토머스 홉스가 확인했듯이 헌법을 무시하면 사회가 야만적이고 잔혹하고 처참한 나락(奈落)에 빠지기 때문이다. 헌법 없이는 조화롭고 생산적인 정치공동체가 불가능하다. 교통규칙 없이는 사고·혼잡으로 안정적인 통행이 불가한 것과 같은 이치다. 촛불 민심이 요구한다고 해서 반헌법적 ‘사회개혁기구’를 만들 수는 없다. 민심도 헌법 아래에 있다. 헌법에 어긋나는 주권도 없다. 민주주의도 헌법 아래에 있다. ‘국민의 헌법의식이 곧 헌법’이라는 문재인 전 대표의 말은 그래서 틀렸다. 헌법재판소도 국민의 뜻이 아니라 헌법과 법에 따라 탄핵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문재인 전 대표의 ‘혁명’은 헌재에 대한 협박일 뿐만 아니라 피를 부르는 처참한 갈등만 초래할 뿐이다.

흥미로운 건 어떻게 헌법이 평화롭고 번영하는 정치공동체를 가능하게 하는가의 문제다. 헌법의 두 가지 중요한 역할을 통해서다. 하나는 효율적으로 정치권력을 조직하는 역할이다. 이는 독재, 과두제, 민주제 등 권력구조, 즉 누가 통치하는가(권력의 원천)의 문제를 다룬다. 이상적 권력구조로서 우리 헌법은 민주제를 택했다. 피를 흘리지 않고 평화롭게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주권재민, 대통령제, 의회 구성, 선거제도 등이 민주제와 관련한 권력구조다.

권력구조와는 전적으로 상이한 그래서 각별히 주목을 끄는 헌법 역할이 있다. 이게 과세권, 예산권, 입법권 등 공권력을 엄격히 제한하는 일이다. 권력 제한, 즉 어떻게 통치하는가(권력의 내용)의 문제를 다루는 게 그 역할이다. 권력 제한을 위한 헌법규칙의 예는 자유·재산보호 원칙, 과세규칙, 차별입법 금지, 대통령 탄핵 등이다. 헌법규칙을 통해서 실현할 이상은 현행 헌법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자유시장, 법치, 작은 정부를 핵심으로 하는 자유사회다.

중요한 건 권력 제한의 이유다. 공공선택론이 확인하듯 정치적 이기심 때문이다. 권력 제한이 없으면 정치 참여자들이 이권 추구에 몰입한다. 민심을 이용해 자기 뱃속을 챙기는 인기영합적 정치가 지배한다. 그 결과 번창하는 건 정치적 연줄로 먹고사는 정실주의다. 사적 영역은 축소되고 경제적 자유는 유린된다. 분배 왜곡과 경제 침체는 불 보듯 뻔하다. 헌법의 권력 제한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권력 제한이 필요한 또 하나의 더 근원적 이유가 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주장했듯이 ‘지식의 문제’ 때문이다. 선의의 정책이라 해도 지식의 한계 때문에 자원을 의도적으로 통제할 수도, 광장의 민심이 원하는 바대로 법을 만들 수도 없다. 집단적 광장 민심의 상당 부분은 개화된 게 아니다. 내용도 불명확하고 단기·편파·감성적이다.

“새로운 세상은 시민혁명을 통해 완성해야 한다”는 문재인 전 대표의 혁명가(革命歌)는 지적 자만이다. 지적 자만은 무자비한 정부 간섭, 정치와 결탁한 이익집단 횡포, 경제적 자유의 유린 등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프랑스혁명, 1960년대의 ‘68문화혁명’ 등 역사가 입증한다.

결론적으로 모든 사람이 자유와 번영 속에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정치공동체가 가능한 것은 정치적 이기심과 지적 자만을 억제하는 헌법의 역할 때문이다. 헌정질서가 존엄성을 갖는 이유다. 헌정질서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정치인이 아쉬운 때다.

민경국 < 강원대 명예교수·경제학 kwumin@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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