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구하는 것조차 어려워"
서울 노량진 인근에서 계란빵을 파는 노점상을 운영하는 서모씨(70)는 일주일 전 붕어빵 기계를 들였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유행으로 계란 값이 폭등하면서 계란빵만 팔아선 남는 게 없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서 씨는 “안그래도 불경기라 장사도 안되는데 주 재료비도 올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계란빵·토스트 등 길거리 음식을 파는 노점상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AI 확산으로 국내 사육 중인 산란계(알 낳는 닭)가 다섯 마리 중 한 마리 꼴로 살처분되면서 계란 값이 ‘금값’이 되면서다.
계란 가격은 2주 연속 5%씩 급등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계란 한 판(30알) 가격은 AI가 발생한 지난 10월 28일 5608원에서 지난 20일 6781원으로 20%가량 올랐다. 유통업계에선 “다음 주엔 10% 오른다”거나 “이달 내 1만원 대가 된다”는 예상도 나온다.
노점상 상인들은 계란 자체를 구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신림동 사거리에서 10년째 토스트 노점을 하는 김모씨(55)는 “요즘은 계란을 구하러 다니는 게 제일 큰 일”이라고 말했다. 노점상 대부분이 계란을 이마트·롯데마트 등 대형 마트에서 공수하거나 전문 식자재 공급 업자에게서 납품 받는데 업체들이 인당 구매량을 제한하거나 가격을 올리고 있는 탓이다. 이마트·롯데마트·코스트코는 계란 판매를 1인 1판으로 제한하고 있다. 하루에 계란 7~10판을 쓰는 김씨는 “오늘만 마트를 5군데 돌아다녔다”며 “내일 장사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납품업체를 이용하는 노점상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납품업체들도 계란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공급이 달려서다. 식자재 납품업을 하는 김모씨는 “이전에도 AI 사태가 있었지만 이번처럼 계란 구하기 힘든 건 처음”이라며 “2주 후엔 아예 계란을 못 구할 것이란 말도 나돈다”고 말했다.
노점상들은 재료비가 올라도 현실적으로 판매가를 올릴 수도 없다. 신촌에서 떡볶이 노점을 하는 최모씨(43)는 “가볍게 허기를 달래려 이용하는 사람이 많은데 가격 올리면 사먹겠나”며 “재료비가 올라도 곧바로 가격을 올리기 쉽지 않다”고 했다.
일부 노점상은 AI 사태에 대한 정부의 늑장 대응에 불만을 내비쳤다. 한 노점상은 “최순실 사태에 정신이 팔려 정부가 계란값엔 관심도 없는 거 아니냐”며 “AI가 한 두 번 온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대응을 못하는 이유가 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유의선 전국노점상총연합 정책위원장도 “AI 사태에 따른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정환/김형규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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