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 뚫린 국가방역망] AI 방역 '속수무책'…최대 닭 산지 경기도, 세 마리 중 한 마리 살처분

입력 2016-12-21 18:26  

한달 만에 2085만마리 살처분 '사상 최대'

전국 산란계 20%·산란종계 40% 도살처분
계란값 한달새 27% 급등…피해 장기화 우려
늑장 대응이 禍 키워…방역당국은 농가 탓만



[ 김재후 기자 ]
2084만9514마리. 21일 기준으로 전국 농가에서 고병원성(H5N6형) 조류인플루엔자(AI)를 이유로 도살한 닭과 오리 등의 숫자다. 10일 전(지난 11일·887만8000마리)보다 곱절 이상으로 불어났다. 역대 가장 빠른 속도로 확산 중인 AI 앞에서 방역당국은 무기력하다.

◆가금류 살처분 역대 최대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이날 기준으로 도살처분된 닭은 1637만5000마리다. 국내 닭 농가가 보유한 전체 닭의 10.6%다. 계란을 낳는 산란계와 산란계의 어미인 산란종계(씨암탉)의 피해는 훨씬 크다.

이날까지 전국 산란종계의 38.6%인 32만7000마리가 도살처분됐다. 전국 산란계의 20.8%인 1451만3000마리가 땅에 묻혔다. 한 달 만에 전국 산란계 열 마리 중 두 마리, 전국 산란종계 열 마리 중 네 마리꼴로 잃은 것이다.

AI 확산 속도를 감안하면 앞으로 추가로 살처분될 산란종계와 산란계는 급속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계란 대란’이 예상보다 오랜 기간 이어질 공산이 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경기도에 피해 집중

전국에서 닭을 가장 많이 기르는 광역자치단체는 경기도다. 통계청에 따르면 경기도에선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578개 농가에서 3287만마리를 기르고 있다. 전국 닭의 5분의 1 정도가 이 지역에 몰려 있다. 최대 소비처인 서울 및 수도권에 닭과 계란을 공급하기 유리해서다.

그런 만큼 피해는 경기도에 집중되고 있다. 이날 이천 화성 안성 평택의 농가에서 추가로 AI 확진 판정이 나 경기도에서만 감염 지역이 11개 시·군으로 늘어났다. 경기도에서 도살처분된 닭과 오리는 1031만6656마리에 달한다. 전국에서 도살처분된 가금류의 절반이며, 경기도가 보유한 닭의 30%다.

경기지역 피해가 큰 것은 이번 AI 주 확산 대상인 산란계 농장이 특히 많고 대규모 경영을 하는 게 원인으로 분석된다. 경기도엔 전국의 36%에 해당하는 산란계 농가가 분포하고 있다. 10만마리 이상 사육하는 대규모 농장도 41곳에 달한다. 지난 18일 AI가 발생해 살처분 작업을 한 평택 농가의 사육 닭은 62만마리였다.

◆방역당국 속수무책

도살처분 후폭풍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경기도 다음으로 AI 피해가 큰 충남은 이미 2014년 구제역 파동과 2014~2015년 AI 파동으로 돼지와 닭·오리를 살처분한 적이 있어 추가로 땅을 파고 묻을 공간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하루 250t 소화가 가능한 도살처분 장소에 580t의 닭과 계란이 쌓이기도 한다. 야적이 불가피해 폐수가 실개천으로 흘러들어가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방역당국은 농가와 지방자치단체를 문제 삼고 나섰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계란을 반출하거나 닭을 팔기 위해 감염 지역에서 농가 간 이동을 하는 사례가 아직도 파악되고 있다”며 “차량을 통제하기 위해선 GPS를 설치해야 하는데 승용차와 오토바이의 경우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거부하는 농가가 상당수”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방역당국은 매뉴얼과 지침을 운영하고, 지자체는 이를 시행하고 점검해야 하는데 동네 사람이라는 이유로 느슨하게 관리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부터 1주일간 전국 AI 발생 농가 3㎞ 방역대 내에서 생산된 달걀 반출을 금지하기로 했다. 농장 간 감염을 막기 위한 긴급 조치로 전날까진 발생 농장 500m 내 계란의 반출만 금지했었다.

문제는 초동 대응에 실패한 정부로서도 기본 방역 외에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뒤늦게 백신 개발에 나선다고 발표했지만 최소 넉 달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 4월은 돼야 백신 투여가 가능하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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