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귀로 듣는 시라고 할까요

입력 2016-12-25 18:00  

신달자 < 시인 >


최근에 나는 내 몸의 부분들을 배로 키워 일을 시키고 있어서 극도로 피로에 찌들고 있다. 눈을 몇 배로 크게 뜨고, 귀를 열 배로 키워 듣기도 하다가 입을 두 배 키워 말이 아니라 함성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가장 노동에 가깝게 일하는 것은 귀다. 북촌에 살면서 서서히 재미를 찾아가는 그쯤에 주말이면 거센 함성으로 내 귀는 기능을 잃을 것만 같다. 때로는 피신해서 주말이면 방을 빌려 어디론가 떠나기도 하지만 참 이상한 일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 그 소리가 궁금해 TV를 켜는 일은 무엇인가’ 하고 나는 나에게 묻는다.

도무지 그 소리의 힘은 무엇이기에 귀를 막으면서 기어이 듣고 싶은 것인가. 나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가지, 세 가지 생각으로 나의 의견을 합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소리와 함성의 질을 따지는 것은 아니다. 빨강과 파랑을 따지는 것도 아니다. “거리를 메우고 나라를 흔들어대는 그 소리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나는 나에게 질문하고 있다.

성탄 저녁에는 미사를 함께 보고 가족끼리 모였다. 이제 막 대학에 붙은 손주까지 열 명이다. 우리는 올 한 해 가장 기쁜 일을 말하기로 했다. 그중 촛불행사를 꼽은 가족이 몇 명 있었다. 촛불을 들고 광화문거리에 서 있던 가족도 셋이나 있었다. 나랏일에 앞장서는 단호한 의지가 대견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단 하나의 생각으로 그들에게 “잘했다”고 말하지 못했다. 1년 동안 우리들의 일상은 늘 조마조마하면서 다만 노력과 의지로 내일로 가는 데 총력을 기울이며 살았다. 성실하게 재미와 행복을 꾸려가는 것이 우리 가족의 생활철학이므로 가족 ‘카톡’에는 ‘오늘도 감사하게’라는 지극히 평범한 말이 날마다 떠오른다.

우리들의 꿈이 어마어마한 것이 아닌데도 그걸 이루는 것은 왜 그렇게 힘든 것인지 모른다.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태산을 오르는 일이라는 것을 체험하면서 퇴근해 집 문을 여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안심이란 말을 두 손으로 잡기엔 겸손밖에는 없었다. 그 태산 오르기의 일들을 끝내고 편안하고 싶은, 즐기고 싶은 주말을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향하는 발길을 생각하면 그쪽에서 들리는 함성을 소음으로 들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 걸음이 소박한 표현이었고 애국이었을 것이다. 나는 늘 말한다. “이 나라는 너희 아이들이 살아갈 나라다.” 나는 이 말을 할 때 꼭 눈물이 난다. 그래 그런 의미에서 그 어려운 걸음을 하는구나 생각하면서 오늘의 현실을 더 진지하게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 귀는 충실하게 함성의 소리를 낱낱이 기억하고 그 소리의 응답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를 생각하곤 한다. 6·25의 총성을 나는 기억하고 4·19의 함성을, 그 이후에도 그치지 않은 국민의 함성을 기억한다. 국가는 권력의 힘이 아니라 국민의 힘으로 수정 보완한다는 것은 지금에도 상식이다. 다만 지금 나는 눈을 더 크게 떠 진실을 보고 내 입은 때로 침을 튀기며 흥분하듯 말하지만 한 해를 앞에 놓고 나는 더 고요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깊은 곳에서는 개가 짖어도 법문이라는 말이 있듯 지금은 광화문 쪽으로 눈만 돌려도 애국을 표현하는 하나의 몸짓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누구나 자기 앞에 놓인 사소한 일들을 꾸준히 성실히 해내는 힘이야말로 함성 다음으로 가야 할 우리 인생역에 도달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나는 오늘을 자꾸만 빠르게 과거로 돌려놓고 그 옛 동화에 나오는 마지막 장면을 떠올린다. “그리하여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론을 받을 수 있으려면 귀로 듣는 시의 힘을 해독하는 진실이 필요하다. 우리의 애국이 함성에 밟히거나 묻히지 않게 우리가 지켜보는 거짓말을 지우는 진정한 진실, 한국의 정신일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신달자 <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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