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엣젯항공, 단숨에 2억달러 조달
JP모간 등 글로벌 투자자들 공모주 청약 받으려 줄줄이 대기
미래에셋베트남 자본금 두 배로
진출한 한국 8개 은행 현지서 각축
"신천지가 신기루될라" 일부 지적도
[ 박동휘 기자 ] 호찌민거래소는 요즘 ‘공모주 대박’ 열기에 휩싸여 있다. 상장했다 하면 연일 상한가다. ‘사이공 맥주’를 만드는 사베코(SABECO) 주가는 공모가 대비 벌써 두 배가량 뛰어 시가총액이 40억달러를 넘어섰다. 불과 며칠 만의 일이다. 베트남 항공업계 2위이자 저비용항공사(LCC)인 비엣젯의 기업공개(이달 말 예정)엔 JP모간, BNP파리바, 드래곤캐피털 등 글로벌 투자자가 몰리면서 수요가 공모 예정 물량을 훌쩍 넘어섰다.
기회의 나라 베트남
비엣젯 공모 열기는 베트남이 ‘금융 신천지’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달 말 기업공개에 앞서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주식 20%를 얼마씩 배정할지를 결정한 날인 지난 16일, 베트남 호찌민 증권가(街)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물량 배정을 둘러싸고 투자자 간 치열한 신경전이 오갔다. 민영기업인 비엣젯은 국적 항공사인 베트남항공과 차별화된 서비스로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결과는 비엣젯의 승리였다. JP모간 등 글로벌 ‘큰손’조차 신청 물량의 15% 수준밖에 받지 못할 정도로 기관 수요가 몰리면서 비엣젯은 단숨에 2억달러를 조달해 시가총액이 10억달러를 넘어섰다. 아시아나항공의 시가총액이 1조원에 못 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금액이다. 한국투자, 미래에셋, 피데스 등 베트남에 진출해 있는 국내 자산운용사들도 물량 확보에 뛰어들었지만 그중엔 한 주도 받지 못한 곳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 정부의 민영화 정책에 따라 증권시장 ‘데뷔’를 앞둔 ‘대어’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어서 베트남 증시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내년 민영화 예정인 국영 손해보험사 바오민이 대표적인 사례다. 업계 3위로 국내에서도 한화, 교보생명 등이 지분 인수에 참여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베트남 국영기업은 숫자로는 전체 기업의 1%에 불과하지만 베트남 국내총생산(GDP)의 20%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덩치가 크다.
KOTRA 등에 따르면 정부 지분이 100%인 베트남 기업 숫자는 올 9월 기준 695개에 달한다.
제조업에 치우친 베트남 투자
미래에셋대우가 호찌민법인의 자본금을 1000억원으로 증자하려는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박현주 회장은 상업용 빌딩 등 부동산 투자에도 적극 나서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경제성장률이 2%대로 떨어지는 등 ‘한계돌파’를 위해선 베트남이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의지다.
베트남 경제 성장과 함께 은행업도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베트남 은행의 이익률은 지난해 6%대를 회복했다. 금융위기 이후 발생한 부실채권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긴 하지만 3%에 달하는 순이자마진(NIM)은 은행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소매금융시장의 성장 잠재력 또한 크다. 현지 대표은행인 VCB의 지난해 개인신용부문은 50.4% 성장했다. 올해도 50%대를 유지할 전망이다. 응우옌또안탕 베트남은행연합회 사무총장은 “고리 대부업에 의존하고 있는 급여생활자들이 점차 은행 고객으로 흡수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한, 국민, 우리 등 8개 국내 은행이 베트남에 진출해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토종 업체들과 경쟁 ‘치열’
국내 금융회사들의 행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 차례 고배를 마셨던 터라 더욱 의미 있다는 평가다. 당시 한국투자, 미래에셋 등이 모집한 베트남펀드는 시가총액이 4조원에 불과한 호찌민증권거래소에 1조4000억원가량을 투자했다. 하지만 금융위기로 외국인 자금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베트남펀드들은 대규모 손해를 봤다.
이에 따라 대(對)베트남 투자는 공장을 세우는 등 직접 투자에 집중돼 왔다. 올 상반기 누계 기준으로 한국이 베트남에 투자한 돈은 총 485억1000만달러에 달한다. 제조업과 부동산·건설이 각각 68.8%, 21.7%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호찌민증권거래소의 시가총액이 약 40조원으로 성장하는 사이 한국의 투자액은 고작 7000억원에 머물렀다. 이 중 공모펀드는 약 3000억원에 불과하다.
기회의 문이 열렸음에도 베트남 증권 및 자산운용사들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나가야 할 처지다. 비엣젯 공모만 해도 그룹의 계열 증권사가 주관사를 맡았을 정도로 토종 증권사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현지 증권업계 관계자는 “한국 증권사도 그룹 물량을 처리하면서 성장했다”며 “베트남도 한국식 모델을 따라간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시장에선 영미계에 뒤처져 있다. 영국계인 드래곤캐피털이 베트남 자산운용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제조는 삼성, 금융은 드래곤’이란 말이 현지에 회자될 정도다. 베트남 증시가 폭발하자 드래곤캐피털은 한국 투자자를 대상으로 베트남 전용 펀드를 모집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들어 베트남에 진출한 은행들의 수익성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환태평양자유무역협정(TPP) 발효라는 호재만 믿고 진출한 저임금, 단순가공업체들이 도산하는 일이 종종 발생해서다. 현지 은행 관계자는 “하노이 지역 기업 한 곳이 무너지면서 부실 대출이 발생했는데 이 한 건만으로도 대출에 참여한 은행 대부분이 올해 순손실로 반전될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지 진출한 한국 기업에 대한 영업 의존도가 높은 탓이다.
호찌민=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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