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기술 벤처·중소기업 불씨를 살려야 한다

입력 2016-12-26 17:43  

수많은 육성책에도 생기 없는 벤처 토양
정부는 규제철폐, 민간주도 생태계 조성
벤처 자양분인 '기술마당'도 더 키워야

박진우 < 고려대 교수·공학 >



어떤 상황에서도 든든히 버틸 것이라고 믿었던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내년에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한다. 경제 침체는 국민의 살림살이에 직결되는 사안이고, 나라 위상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중차대한 문제다. 수년 전부터 경제 위기설이 제기돼 왔으니 정부 또는 사회 어딘가에 대응방안이 마련돼 있으리란 기대를 해보지만 내년도 예산내역이나 정책시행 방향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작금의 국정혼란 상황에서 대기업들마저 대선이란 정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면 경제가 장차 어떤 지경에 이를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이 있다. 상황이 급하고 위중할수록 더 신중히 숙고해 옳은 길을 찾아가라는 의미다. 우리 경제가 몇몇 대기업에 의해 좌지우지된 것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하니 우리 경제에 새로운 힘, 즉 기술중심의 벤처와 중소기업의 싹을 살려 버팀목으로 만드는 것이 해답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방안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쪽으로 가야 한다.

최근 미국과 중국 등에선 혁신기술 사업으로 성공한 벤처와 중소기업의 수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그 기세가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반면 우리의 기술중심 벤처와 중소기업 상황은 황량하기 이를 데가 없다. 지난 20여년에 걸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수많은 벤처 및 중소기업 육성정책을 만들어냈고, 이를 통해 매년 막대한 세금이 투입돼 왔다. 그럼에도 기술중심 벤처와 중소기업이 활성화되기는커녕 건실했던 기업들마저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상황에 처해 있다. 국가 차원의 지원도 필요하지만 이제까지의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근본원인을 찾아내 해소하는 것이 우선이다.

벤처와 중소기업을 향한 정책이라면 모험과 실패까지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세금이 투입되기 때문에 법으로 엄격히 통제해야 한다는 식의 경직된 정책 운영은 시시각각 사업 환경이 변하는 벤처와 중소기업 영역에서는 통할 리 없다.

1997년에 시작된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벤처특별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법 시행 후 발생한 정부투자금 유용과 운영의 위법성 등 문제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명분 아래 사전규제만 강화된 법으로 변질됐다. 이로 인해 기업이 정부 지원을 받는 즉시 제대로 된 기업활동을 하기 어렵게 됐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벤처특별법 일몰시점의 10년 연기는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규제의 내용과 운영 주체의 틀에는 변화가 없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래서야 벤처와 중소기업 설립 및 운영이 완전히 자유로운 미국, 최근 정부가 앞장서 벤처 진흥을 이끌고 있는 중국과 어찌 경쟁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라도 정부의 역할은 지원과 대기업·벤처 간 사업영역 및 상생협력 조정으로 한정하고, 운영은 책임을 동반한 위탁 형식으로 민간에 넘기는 방향을 검토해야 한다.

다음으로 국내 기업들이 가져다 쓸 수 있는 ‘기술마당’의 질과 폭을 키워야 한다. 어린 묘목은 풍부한 햇빛과 적절한 비료가 있어야 제대로 클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기술마당은 너무나 척박하다. 핵심 기반기술을 제공해야 할 주체인 대학과 국가출연연구소(출연연)가 본연의 역할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대학의 교수와 연구생들은 논문, 그것도 세계적인 저널에 논문을 게재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으니, 여기서 만들어지는 연구결과 또는 이로부터 만들어지는 특허기술은 벤처와 중소기업이 활용하기에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출연연도 산업기술과 거리가 있는 기초과학연구를 수행하거나 자체 산업연구사업 위주로 운영돼 실질적인 산업기술 제공자 역할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이대로라면 국내 벤처와 중소기업은 해외 핵심기술 및 중가제품의 가공업체 수준으로 떨어져 해외 시장은커녕 국내 시장에서조차 소멸할 가능성이 크다.

박진우 < 고려대 교수·공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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