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사 교과서 사태' 재연 가능성
[ 김봉구 기자 ] 교육부의 선택은 ‘유예’와 ‘절충’이었다. 2017학년도에 국정 역사교과서를 전면 적용하는 당초 계획 대신 1년 뒤인 2018학년도부터 국·검정교과서를 혼용하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적용시기 연기와 선택권 부여의 ‘2보 후퇴’ 결론을 낸 것이다.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사진)은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같은 내용의 국정교과서 현장적용 방안을 발표했다. 단일 국정교과서로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겠다는 ‘국정화’ 기조를 사실상 철회했다. 1년 뒤로 미뤄진 국정교과서의 실제 적용 여부는 차기 정부 몫으로 넘어가게 됐다.
이 장관은 “2017학년도에는 지정된 연구학교에선 올바른 역사교과서(국정교과서)를, 다른 학교에선 기존 검정교과서를 주교재로 사용한다. 2018학년도부터는 국·검정교과서를 함께 사용토록 하겠다”며 “자율성과 다양성을 확보하고 역사교과서 질을 높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래 국정화 계획에서 몇 발 물러선 이유에 대해 “현장검토본 공개 후 4주간 의견수렴 과정에서 개진된 국정교과서에 대한 긍정적·부정적 평가를 함께 고려했다”면서 “무엇보다도 새 학기에 혼란 없이 안정적 역사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해 방법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현 정부가 추진해온 역점 사업을 완전히 백지화하지는 않는 동시에 거센 국정화 반대 여론을 감안해 균형점을 찾으려 고심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이 장관은 “국정교과서 반대 의견을 보면 대부분 졸속적으로 만들어진 점,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은 점을 이유로 들었다”고 짚은 뒤 “내년 1년간 연구학교에서 시범적으로 사용하면서 보다 질 좋은 교과서를 만들고, 검정교과서도 학교에서 선택 가능토록 했으므로 이러한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촉발한 2014년 교학사 교과서 사태를 반복할 개연성이 크다는 맹점을 갖고 있다. 우편향 논란을 낳은 교학사 교과서는 당시 학교에서 선택하는 족족 강력 반발 끝에 채택을 철회해야 했다.
전국적으로 선택하는 학교가 거의 없는 교학사 교과서의 재판(再版)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교육부는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국정교과서와 새로 개발된 검정교과서를 같이 놓고 학교에서 선택하게끔 하겠다. 시범 사용하는 1년간 국정교과서 질을 높여 많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힘쓸 것”이라고만 했다.
이 장관도 “규정에 따르면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에서 교과서를 추천하면 학교장이 결정하도록 돼 있다”고 답한 뒤 교장과 교사, 학운위 간 의견차가 있을 경우에 대해선 “교육부가 관여하기보다는 학교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내용이다. 학교장이 최종 결정하더라도 교사나 학운위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라고 덧붙였다.
내년 국정교과서를 시범적으로 사용할 연구학교가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다. 교육부 관계자는 “내년 1월에 수요조사를 실시해 관련 절차를 진행할 것이다. 연구학교로 지정되면 일정 수준(1000만원)의 지원금을 받는다”라고 귀띔했다.
의견수렴 과정에서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던 건국절 논란, 즉 ‘대한민국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찬반이 워낙 팽팽한 사안이다. 집필진 토론을 거쳐 반영 여부를 정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 진보 교육감들의 국정교과서 거부 움직임과 관련해선 “최대한 교육부와 교육청이 협력해 역사교육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하겠다”고 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교육부 결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교총은 “국정교과서 적용 1년 연기로 첨예한 갈등을 접고 차분히 재논의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했다”면서 “이제 국정교과서 채택 여부는 차기 정부로 넘어갔다. 차기 정부는 교육 현장의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 역사교과서 발행체제와 내용을 검토, 결정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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