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총장의 롤 모델 쿠르트 발트하임

입력 2016-12-27 14:44  



(뉴욕=이심기 특파원) 대권 도전을 선언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14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의 링컨센터에서 열린 한 음악회에 예고없이 나타났다. 미국호주재단(AAF)이 주최한 이 음악회에선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초청 공연이 열렸다. 반 총장은 청중들에게 “사무총장 재임기간 중 서울보다 비엔나를 더 많이 찾았다”며 오스트리아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시해 환호를 받기도 했다.

이달 초 반 총장이 마지막 해외출장지로 선택한 곳도 오스트리아 비엔나였다. 재임 중 마지막으로 유엔난민기구와 국제원자력기구 등 유엔 산하기관을 방문하기 위해서였지만 반 총장 개인으로서도 오스트리아는 각별한 곳이다.

반 총장은 외교부 차관으로 부임하기 직전인 1998년부터 3년간 주오스트리아 대사를 지냈다. 이 기간동안 유엔 사무총장과 국가 수반을 지낸 쿠르트 발트하임 전 오스트리아 대통령과 교분을 쌓은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당시에는 본인이 유엔 사무총장이 되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2007년 유엔 수장이 되고, 2012년 연임까지 하면서 발트하임 총장의 커리어가 반 총장의 롤 모델이 됐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반 총장은 특히 지난 7월 퇴임한 하인츠 피셔 전 오스트리아 대통령과 특별한 친분을 갖고 있다. 올해 1월1일에는 비엔나 신년음악회 초청을 받아 첫 출장지로 오스트리아를 다녀왔다. 피셔 전 대통령은 여름 휴가에는 대통령 여름별장으로 반 총장을 초청하기도 했다. 이 곳은 과거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제가 사냥 별궁으로 사용하던 유서 깊은 곳이다. 발트하임 전 대통령도 이 곳을 즐겨 찾았다.

반 총장 주변에서는 12월 오스트리아를 다녀온 반 총장이 대권 도전의지를 굳혔다는 얘기도 나온다. 1970년 외무고시에 합격한 뒤 46년간 외교관으로만 한 우물을 판 그가 ‘구름’ 밑으로 내려와 현실정치에 뛰어들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된 계기가 오스트리아 방문 직후였다는 분석이다.

반 총장은 지난 20일 저녁 맨해튼의 한 음식점에서 지지자들과 만찬을 하면서 “이제 힘든 여정을 앞에 두고 있다”고 심경을 밝혔다. 대선 출마의사를 굳혔으며, 현실정치의 벽을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발언이라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이날 오전 반 총장은 유엔본부서 열린 한국 특파원단과의 마지막 기자회견서 “국가를 위해서라면 한 몸 불사르겠다”며 대권 도전의사를 밝혔다.

이날 모임에서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3만달러의 불법자금을 수수한 의혹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검찰 수사정보에 박 전 회장과의 금품수수 관련 부분이 있으며, 이 문제가 곧 어떤 형태로든 제기될 것이라는 걸 예상했다는 설명이다. 시사저널의 보도 이전부터 본인에 쏟아질 각종 의혹과 루머, 마타도어에 대한 자체 검증과 대응 준비를 끝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반 총장도 이날 관련 의혹을 말도 안되는 모함이라고 일축하며, 적절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반 총장의 귀국 시점과 관련, 주변에서는 본인의 일정보다는 한국 내 정치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의 대거 탈당이 어떤 국면으로 이어질지 지켜봐야 한다는 의미라는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귀국과 함께 보다 진전된 메시지를 내놓아야 하고, 각종 의혹에 대해서도 본인 스스로 입장을 밝혀야 하는 만큼 택일(擇日)이 고민스럽다”고 전했다. (끝) /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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