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바뀌거나 SF 틀에 러브 스토리 입혀 관객몰이 나서
"예전 로맨스 영화로는 관객 유치 힘들어" 업계 인식 반영
[ 유재혁 기자 ] 새해 극장가에서 한국, 미국, 일본의 색다른 로맨스 영화들이 관객몰이 경쟁에 나선다. 다음달 4일 일제히 개봉하는 한국 영화 ‘사랑하기 때문에’, 할리우드 공상과학(SF) ‘패신저스’,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이다. 이들 작품은 전통적인 로맨스 영화와 달리 구성이 독특하다. 시공을 초월해 타인과 영혼이 뒤바뀌거나 SF 모험의 틀에 러브 스토리를 새겨놨다. 전형적인 방식의 로맨스로는 더 이상 관객을 유혹할 수 없다는 각국 영화인들의 인식이 반영돼 있다.
◆몸을 갈아타며 펼치는 사랑의 모험
주지홍 감독의 ‘사랑하기 때문에’는 사랑하는 연인(서현진)에게 고백하러 가던 작곡가 이형(차태현)이 교통사고를 당한 뒤, 아이러니컬하게도 설레는 연애 판타지가 시작된다. 교통사고로 남의 몸에 들어갈 수 있는 뜻밖의 능력을 얻은 주인공은 여고생, ‘모태솔로’인 식탐 선생, 이혼 위기의 형사, 치매 할머니까지 몸을 갈아타면서 사랑의 모험을 펼친다. 엉뚱한 소녀 스컬리(김유정)가 모험의 동반자가 된다.
이형이 몸을 빌린 사람들은 모두 사랑에 서툴러 위기에 놓인다. 그의 모험은 작은 관심과 배려만으로도 얼마든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훈훈한 러브 스토리로 순조롭게 펼쳐지던 플롯은 마지막 반전으로 ‘한방’을 남긴다. 사랑은 미루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해야 한다는 절실한 울림이다. 동화 같은 상상에 코미디와 신파를 버무려냈다.
◆우주선 속 남녀의 사랑과 반전
모르텐 튈둠 감독의 ‘패신저스’는 초호화 우주선에서 동면한 채 120년간 개척 행성으로 날아가는 미래 사람들의 이야기다. 도착할 때까지 동면하도록 설계된 기계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한 남자(크리스 프랫)가 30년 만에 깨어나고, 외로움에 지친 그가 아름다운 여자(제니퍼 로렌스)를 깨운다. 동면에 다시 들어갈 수 없어 우주선에서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두 남녀는 사랑에 빠져들지만, 비밀을 알아챈 여자의 분노로 멀어진다. 이때 두 사람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기가 닥쳐오면서 상황이 반전된다.
광활한 우주 속에서 주인공들은 한없이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느낀다.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싶어질 때 자연스럽게 사랑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된다. 현대인들이 사랑하기 어려운 까닭은 복잡하고 바쁜 일상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성찰할 기회를 얻지 못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두 사람의 모험을 통해 영화는 외로움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랑의 묘약임을 일깨운다.
영화는 우주여행에 대한 호기심도 충족시켜준다. 우주복을 입고 선체 밖으로 나가 우주 한복판을 날아다니고, 아름다운 행성을 지나면서 장엄한 풍경에 넋을 잃기도 한다. 우주 한복판에서 수영을 즐기는 상상도 스크린에 펼쳐놓는다.
◆몸이 바뀐 도시 소년과 시골 소녀
‘너의 이름은’은 일본에서 1500만여명의 관객을 모은 히트작이다. ‘제2의 미야자키 하야오’로 불리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으로, 꿈속에서 몸이 뒤바뀐 도시 소년 타키와 시골 소녀 미츠하, 만난 적 없는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기적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미츠하와 타키는 각각 시골과 도시에서 잠자는 동안 몸이 뒤바뀌면서 서로의 삶 속으로 얽혀들어가게 된다. 전반에는 가벼운 연애담처럼 흐르다 중반 이후 두 사람의 안타까운 사랑과 운명의 실체가 드러난다. 그들의 운명에는 ‘떨어지는 혜성’ 등 우주의 신비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전혀 다른 공간에서 얼굴조차 모르고 살던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는 설정은 ‘마법 같은 사랑의 본질’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어린이보다 어른들이 더 좋아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10대들의 성장기와 로맨스에다 광활한 우주의 신비를 뒤섞은 내용의 ‘별의 목소리’ ‘구름의 저편’ ‘별을 쫓는 아이’ 등과 같은 신카이 감독 전작들의 연장선에 있다. 하이틴 로맨스, 재난, 미스터리, SF 등을 총망라한 애니메이션 대작이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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