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잠식 벗어나며 재무지표 개선 '첫발'
수주절벽 해소·드릴십 대금 인수가 우선 과제
내년 회사채 상환 큰 부담…앞길은 '산넘어 산'
[ 김일규 기자 ]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에 빌려준 돈 등 1조8000억원어치의 채권을 29일 주식으로 전환해 지분 79%를 확보한다. 이렇게 되면 대우조선은 산업은행의 상법상 자회사로 편입된다. 정부와 산업은행이 지난해 10월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유동성 위기에 빠진 대우조선에 4조2000억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최대한 빨리 매각을 통한 민영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계획과는 정반대 방향이다.
대우조선이 일감 확보를 통해 2016년부터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본 당시 예상부터 완전히 빗나갔다. 선박 ‘수주절벽’이 내년 이후에도 이어지면 대우조선 살리기는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산은·정부 지분율 80% 넘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29일 대우조선에 2조8000억원 규모의 자본을 확충한다. 대우조선이 지난해부터 대규모 영업손실을 내면서 지난 6월 말 기준 완전자본잠식에 빠져 상장폐지 위기에 처하자 이를 피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국책은행들이 지원에 나서게 됐다.
산업은행은 1조8000억원 규모의 출자전환, 수출입은행은 자본으로 인정받는 영구채 1조원어치 매입을 통해 대우조선의 자본잠식 해소를 지원한다. 자본확충이 완료되면 대우조선의 총자본은 -1조591억원(9월 말)에서 1조6000억원으로 바뀐다. 부채비율은 900% 수준이 된다.
이번 출자전환으로 산업은행의 대우조선 지분은 49.7%에서 79%로 껑충 뛰게 됐다. 금융위원회 지분(3.55%)까지 합치면 80%가 넘는 수준이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에 대한 지분율이 50%를 초과함에 따라 상법상 대우조선의 모회사가 된다.
산업은행과 대우조선이 사실상 한 몸이 된다. 상법상 모회사는 자회사에 영업보고를 요구할 수 있고, 보고하지 않으면 자회사 업무와 재산 상태를 조사할 수 있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대우조선 부실이 드러난 뒤 국정감사에서 “부실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사전에 알 수 없었다”고 했지만 앞으로는 이런 변명을 할 수 없다. 대우조선 명운에 산업은행 명운이 달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내년이 더 험난할 것”
문제는 내년이다. 내년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 상환자금과 운영자금 등을 자체적으로 마련해야 하지만, 선박 수주절벽이 계속되고 있어서다.
대우조선은 앙골라 국영 석유회사인 소난골로부터 올 상반기 받기로 한 드릴십 건조대금 10억달러를 받지 못하고 있다. 소난골은 자금 조달 방안을 찾지 못해 드릴십 인수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연내 대금 회수는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며 “내년 초 협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우조선이 신속히 드릴십 대금을 받지 못하면 내년 4월부터 차례로 만기가 돌아오는 94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상환이 쉽지 않을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대우조선은 내년 4월 4400억원어치의 회사채 상환을 시작으로 7월 3000억원, 11월 2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갚아야 한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대우조선에 대한 4조2000억원 규모의 유동성 지원 계획 중 집행하지 않은 7000억원을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고 있다. 하지만 이 자금이 소진되면 더 이상의 대책은 현실적으로 마련하기 힘들다. 금융권 관계자는 “남은 7000억원을 대우조선 회사채 상환에 쓸 경우 내년 상반기 중 지원 자금이 바닥날 것”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신규 수주지만, 글로벌 선박 발주량 급감으로 대우조선은 올해 15억5000만달러 규모밖에 수주하지 못했다. 예년의 10분의 1 수준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대우조선 정상화의 출발은 신규 수주 확보”라고 말했다.
대우조선은 글로벌 발주량이 다시 증가할 때까지 자산 매각과 설비 및 인력 감축 등을 통해 최대한 버틴다는 계획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신규 수주가 안돼 대우조선에 또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경우 법정관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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