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사기꾼' 조희팔 모티프
"배우들 묵직함 살려내면서 이해하기 쉽게 템포 조절"
[ 유재혁 기자 ]
지난 21일 개봉한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 주연 영화 ‘마스터’의 흥행 기세가 무섭다. 개봉 열흘도 안 돼 29일 400만명을 가뿐하게 돌파했다. 흥행 추이를 고려하면 이번 주말 500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130억원을 투입한 이 작품의 손익분기점은 370만명. 단군 이래 최대 사기범으로 불리는 조희팔을 모티프로 조(兆)단위 사기범과 그의 브레인, 지능범죄수사대가 치열한 머리싸움을 벌이는 이야기다. 연출자 조의석 감독(40)은 2013년 ‘감시자들’(550만명) 이후 다시 흥행 홈런을 날렸다.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캐릭터의 밸런스가 좋은 게 흥행 비결이죠.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은 저마다 한 영화를 책임질 수 있는 큰 배우들인데 여기서 각자 적역을 해냈어요. 시나리오 단계에서 세 인물에 대해 욕망의 삼각형을 그려 놓고 쓴 게 주효했습니다. 대본이 좋은 덕분에 세 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었습니다. 제작사(집)나 연출자에 대한 신뢰도 컸고요.”
그는 처음에는 사기범 역의 이병헌에 대해 우려했다. 흥행 영화 ‘내부자들’에서 인생에 남을 만한 연기를 했으니 더 이상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이병헌은 역시 달랐다고 한다.
“이병헌은 첫 장면에서 사기범이 교주처럼 4만명의 군중을 홀려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어야 거대한 피라미드 영업 사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캐릭터를 해석했어요. 그는 정말로 교주처럼 연기했고 희대의 사기꾼답게 만나는 사람마다 다른 모습으로 대했죠. 허당처럼 웃기다가도 갑자기 서늘해지기도 했고요. 참 매력적인 캐릭터예요. 그러나 관객들이 그에게 애정을 품어서는 안 됐어요. 정의로운 형사에게 잡혀야 할 몸이니까요. 그의 연기는 그런 경계를 잘 넘나들었습니다.”
강동원은 이 영화에서 처음 형사 역을 맡았다. 그간 히트한 형사 영화 중 ‘강철중’이나 ‘베테랑’의 서도철 같은 형사가 행동을 앞세우는 캐릭터라면, 강동원이 맡은 김재명은 머리를 쓰는 형사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는 캐릭터예요. ‘썩은 머리를 잘라내자’ ‘대한민국에 저같이 미친 놈 한 놈은 있어야죠’라는 오글거리는 대사를 담백하게 들려줍니다. 정의로운 형사를 강한 남성성으로 표현했어요. 관객들은 이런 난세에 저런 형사가 있다니 통쾌하다는 반응입니다.”
김우빈은 두 선배 연기자 사이에서 ‘양면테이프’ 같은 배역으로 긴장감과 재미를 동시에 줬다고 그는 평가했다. 이병헌의 브레인으로 강동원의 덫에 걸린 김우빈은 양측을 오가며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재치있는 억양으로 대사도 맛깔스럽게 소화했다. 스스로 고민하며 준비를 많이 해왔다고 조 감독은 칭찬했다.
“조희팔을 모티프로 쓴 만큼 전반부에서는 다큐멘터리처럼 사건을 차곡차곡 쌓아가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2시간23분으로 러닝타임이 길어져 비판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후반부에서 제가 바라는 판타지, 바로 영화 같은 결말로 관객의 갈증을 통쾌하게 해소해 줬습니다.”
‘감시자들’에 비해 ‘마스터’의 템포를 약간 낮춘 것도 의도적이다. 배우의 묵직함을 살려내면서 관객이 내용을 이해하기 쉽도록 배려한 것이다.
“‘감시자들’은 소재가 독특한 데다 스테디캠(움직이는 모습을 흔들리지 않고 유연하게 촬영하는 장비)으로 속도감을 끌어올려 흥행에 성공했죠. 은밀하게 걸으면서 추격하는 장면들을 박진감 있게 표현한 거죠. ‘마스터’에서는 스테디캠 대신 플라잉캠(공중 촬영 장비)을 써서 마닐라 뒷골목과 마포대교 등을 공중에서 아래를 조망하는 신을 담았습니다. 덕분에 뷰가 주는 쾌감이 살아났어요.”
2002년 데뷔작 ‘일단 뛰어’부터 ‘마스터’까지 조 감독이 연출한 네 편은 모두 형사물이다. 2006년 ‘조용한 세상’이 흥행에 참패한 뒤 7년간 작품을 못한 채 절치부심(切齒腐心)했다.
“쉬면서 스스로 반성했습니다. 우아하게 찍고 싶은 나머지 유괴범 이야기(조용한 세상)를 너무 정적으로 찍었던 거예요. 미장센(장면 연출)보다는 짧은 커트와 리듬으로 연출하는 게 제 스타일이라고 결론내렸고 ‘감시자들’에서 빠른 호흡으로 승부를 걸어 성공한 거지요.”
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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