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으로 본 2017] 닭은 어둠과 귀신 쫓는 상서로운 동물…대보름날 열 번 울면 풍년

입력 2016-12-30 15:09  

문화 속 닭 이야기


[ 양병훈 기자 ] “천황닭이 목을 들고, 지황닭이 날개를 치고, 인황닭이 꼬리를 쳐 크게 우니 갑을 동방에서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제주에서 전승되는 무속 신화 ‘천지황본풀이’에 나오는 대목이다. 천황(天皇)·지황(地皇)·인황(人皇)은 각각 하늘·땅·인간을 관장하는 신이다. 이들 신의 닭이 울자 천지가 개벽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 우리 조상은 이처럼 닭을 상서로운 존재로 여겼다. 아침에 크게 울어 어둠을 쫓아내고 빛을 불러오는 모습을 보고 닭에게 영험한 힘이 있다고 믿었다.

닭(酉)은 십이지의 열 번째 동물이다. 방향으로는 서쪽, 시간으로는 오후 5~7시, 달로는 음력 8월을 지키는 방위신이며 시간신이다. 닭이 우리 문화에서 상징적인 존재로 처음 등장한 건 《삼국유사》의 김알지(경주 김씨의 시조)와 박혁거세 신화에서다. 신라 왕의 조상인 김알지가 황금 궤에서 태어날 때 하얀 닭이 그의 탄생을 세상에 알렸다.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의 왕비 일영 부인은 계룡(鷄龍·머리가 닭과 닮은 용)의 겨드랑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백제, 고구려도 닭을 숭상했음을 여러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민간에서는 닭의 울음소리로 어둠과 귀신의 시간, 빛과 인간의 시간을 나눴다. 밤을 떠돌던 귀신들이 닭 울음소리를 들으면 일제히 사라진다고 여겼다. 귀신을 쫓을 때 닭 그림을 걸어놓거나 닭 피를 뿌리는 것은 모두 이 때문이다. 가정사의 중요한 순간에도 항상 닭이 등장했다. 사위가 처가에 오면 장인·장모는 씨암탉을 잡아 대접했다. 알을 낳는 씨암탉은 가정의 귀한 재산이다. 신랑·신부가 백년가약을 맺을 때 닭을 청홍 보자기로 싸서 초례상 위에 놓거나 동자가 안고 옆에 서 있었다. 대보름달 꼭두새벽에 첫닭이 열 번 이상 울면 그해는 풍년이 든다고 믿기도 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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