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혁 시대…다시 시작이다] 몰락하는 기득권 정치…글로벌 신리더십 열린다

입력 2016-12-30 18:41   수정 2016-12-31 16:03

(1) 세계 정치 격변의 소용돌이 - 한경·LG경제연구원 공동기획

'반세계화' 자국 우선주의자
분노한 대중의 지지 업고 대약진
내년 프랑스 대선·독일 총선
2차 세계대전 후 세계질서 판가름



[ 이정선 / 박종서 기자 ] “그들의 세계가 무너지면 우리의 세계가 건설된다.”

프랑스의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이 지난달 9일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을 반기며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여기서 말하는 ‘그들’은 수십년간 서구사회를 이끌어온 기득권 정치세력을 가리킨다. ‘우리’는 자유무역 중심의 세계화를 거부하고 보호무역과 자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신(新)국가주의 세력이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결정과 트럼프 당선을 계기로 국가주의자들이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 반(反)이슬람, 반이민, 인종주의 등을 강조하는 우익 포퓰리즘이 이들을 관통하는 정체성이다.

변방의 이단아로 치부됐던 국가주의자들은 세계화에 따른 소득 불평등, 난민 사태 등으로 기성 정치권에 분노한 대중의 지지를 업고 빠르게 세를 넓히고 있다.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새 리더십의 출현으로 세계는 격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국경을 폐쇄하고 단일민족 사회로 복귀하자는 국가주의자들이 서구사회를 장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금융위기 이후 ‘자국 우선주의’ 득세

이탈리아에선 지난 4일 친(親)EU 성향의 중도좌파 집권 민주당이 추진한 개헌 국민투표가 부결돼 마테오 렌치 총리가 물러났다. 40%에 이르는 청년실업률과 만성적인 경기침체에 좌절한 국민이 개헌 반대 진영인 야권의 오성운동, 이탈리아 북부동맹 쪽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이들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당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과 EU 탈퇴가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EU의 통제에서 벗어나 국가주의로 회귀하자는 것이다. 오성운동은 차기 총선에서 집권이 유력하다.

국가 정체성을 중시하는 경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로존 재정위기, 난민사태 등을 거치면서 점차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독일의 극우정당 AfD(독일을 위한 대안)는 “세계화로 거대 기업은 혜택을 보지만 평범한 사람은 손해를 본다. 이는 국가 정체성이 파괴되는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난민 유입 제한, 무슬림 여성의 부르카 착용 금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AfD 지지율은 나날이 오르고 있다. 반면 내년 9월 총선에서 4연임을 노리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권위주의적인 리더십도 급부상하고 있다. 21세기의 ‘차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강력한 ‘국가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제국의 부활을 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 크림반도 병합을 감행하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위협해온 그는 지난 22일 “(서방의) 미사일방어 체계를 뚫어야 한다”며 핵무기 강화까지 시사했다.

중국 공산당 역사상 가장 막강한 권력을 쥔 것으로 평가받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및 역내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남중국해 영유권 강화 등을 통해 무역·금융·해상 패권을 꾀하고 있다. 중국의 팽창주의 정책에 트럼프는 친러시아·반(反)중국 행보로 견제에 나설 태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미·일 동맹을 구실로 동북아 안보지형을 뒤흔들 수 있는 군사대국화의 야욕을 숨기지 않는다.

내년 선거 봇물…EU 쪼개질 수도

1950년대 이후 가속화된 유럽의 ‘초국가적 공동체’ 건설은 유럽의 우경화로 사실상 제동이 걸린 상태다. 헝가리, 핀란드, 폴란드 등 유럽 내 9개국에선 이미 반세계화 정권이 들어섰다. 총선과 대선이 잇따라 치러지는 내년은 유럽의 운명을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뉴욕타임스는 “2017년은 EU의 설립 멤버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모두 유럽 공동체에 회의적인 포퓰리스트 후보가 출마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며 “이들이 당선되면 유럽이 구축해온 체제 붕괴의 결정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이 국가를 뛰어넘는 단일 정치·경제체제로 공존(共存)하다가 다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로 접어들 수 있다는 점에서다.

프랑스 대선에 나설 마린 르펜 FN 당수와 보수 우파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 전 총리가 모두 트럼프처럼 친러시아 인사라는 점도 국제정세에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이들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단행된 서방의 대(對)러시아 경제제재 조치도 반대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프랑스 대선 이후 푸틴이 유럽의 심장에 동맹국을 얻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년 3월은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를 태동시킨 로마조약 30주년이다. 영국의 브렉시트 절차도 이 무렵 마무리될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로마조약 30주년 기념식은 파티가 아니라 초상집 분위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정선/박종서 기자 sun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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