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위기, 대학이 변화 이끌어야" SKY 총장의 '닮은꼴 메시지'

입력 2017-01-02 17:26   수정 2017-02-22 08:09

주요대학 총장 신년사 키워드

성낙인 서울대 총장 "통일·4차산업혁명 대비가 시대적 과제"
염재호 고대 총장 "후진적 민낯 드러나… 대학이 답을 줘야"
김용학 연대 총장 "이질적 지식 충돌해야 새 아이디어 나와"




[ 김봉구 기자 ] 국가적 위기를 맞았다는 진단에서 대학이 사회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처방까지, 2017년 새해를 맞은 주요대학 총장들의 목소리는 하나로 모아졌다. 지금을 ‘문명사적 전환기’로 보고 근본적 패러다임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공통점이었다.

2일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총장들이 내놓은 신년사를 종합하면 이러한 큰 흐름이 읽힌다. 현실 인식부터 메시지 전개, 대안 제시까지 닮은꼴이었다. 성낙인 서울대 총장은 법학자, 염재호 고려대 총장은 정치학자, 김용학 연세대 총장은 사회학자다.

◆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국가적 위기' 진단

총장들은 현재진행형인 탄핵 정국을 리더십과 거버넌스의 심각한 위기로 받아들였다. 성낙인 총장은 “국가 리더십의 중대한 위기로 인해 변화를 갈망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전국에서 울려 퍼졌다”고 말했고, 김용학 총장은 “국가의 근본이 흔들리고 사회의 신뢰가 무너지는 혼란을 경험했다”고 전했다.

염재호 총장은 보다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한국사회 전 분야에 걸쳐 그동안 눈부신 발전 뒤에 숨겨져 있던 후진적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한 해였다”고 짚었다.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언급으로 풀이된다. “지도자들의 무책임과 국가 거버넌스에 대한 불신이 국정 난맥상을 가중시켰다”고도 했다.

국제적 환경 변화도 녹록치 않다고 봤다. 성 총장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미·중 신냉전 구도, 북한 핵실험을 근거로 들었다. 염 총장은 “정치 지도자들이 갈등과 분열을 조장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 "대학도 책임… 사회변화 주도할 때" 강조

이러한 흐름 속에 대학도 제 역할을 못했다는 자체평가를 내렸다. 김 총장은 “대학들이 사회 변화를 이끌지 못할 뿐 아니라 문명사적 변환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위기에 처해있다. 대학이 사회로부터 존경받기는커녕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면서 낙제점을 줬다.

취임하면서부터 ‘선한 인재’를 강조해온 성 총장은 “작년에 일어난 많은 사건을 목도하면서 우리사회에 이타심이나 도덕적 판단능력이 크게 결여됐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염 총장 역시 “국민들의 깊은 불신에서 대학도 자유롭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대학의 역할과 사명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상황이라고 총장들은 한 목소리를 냈다. 4차 산업혁명을 필두로 한 문명사적 도전을 헤쳐 나갈 원동력을 대학이 주도해 만들어내야 한다는 게 골자다.

통일과 함께 4차 산업혁명 대비를 시대적 과업으로 내건 성 총장은 “대학은 사회변화와 발전을 이끄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며 “기존 제조업과 정보기술(IT) 강국의 지위를 넘어 초학제적 인재를 양성하고 미래산업의 길을 밝히겠다”고 다짐했다. 이를 위해 서울대에 ‘데이터 사이언스 혁신대학원’을 설립한다고 귀띔했다.

취임 후 줄곧 ‘개척하는 지성’을 설파해온 염 총장은 “나라가 어렵고 힘들 때, 인류가 미래에 대해 불안해할 때, 대학이 그 문제에 답해야 한다”면서 “지식의 반감기가 점차 짧아지는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총장은 연결성(Connectivity)과 창의성(Creativity)을 핵심으로 꼽았다. 네트워크이론 권위자인 그는 ‘창의력은 융합에서 나온다’는 지론대로 “새로운 아이디어는 이질적 지식들이 충돌하면서 만들어질 것이다. 연세가 기존의 경계를 넘어 연결되도록 하겠다”고 되풀이 다짐했다.

◆ 주요대학 '총장공백·학내갈등'부터 풀어야

정규상 성균관대 총장은 “다사다난이란 표현만으로는 부족한 충격과 격변의 한 해가 저물었다”고 평한 뒤 학령인구 급감, 글로벌 저성장 고착화와 함께 4차 산업혁명을 대학이 맞은 전례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 요인으로 꼽았다.

이영무 한양대 총장도 “국내외 정치적 격랑과 함께 환경에 많은 변화와 불확실성이 예견된다”며 “한국이 산업화 시대 끝자락에서 엉거주춤할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합류할지 기로에 서는 한 해가 될 것이다. 보다 긴 안목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인 KAIST(한국과학기술원)의 강성모 총장은 정국 변화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 없이 ‘창의’와 ‘도전’의 키워드로 질적 성장을 이어온 점을 의미 있게 평했다. 다음 달 임기를 마치는 강 총장은 “4차 산업혁명 허브(hub)를 향한 KAIST의 도전을 계속 응원하겠다”고 덧붙였다.

각종 사업 추진과정에서 소통을 중시하겠다는 약속도 나왔다.

지난해 서울대는 시흥캠퍼스, 고려대는 크림슨칼리지(미래대학) 설립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본관 점거농성을 벌였다. 앞서 송도캠퍼스 설립과 백양로 재창조(지하캠퍼스) 사업을 마친 연세대도 김 총장이 신년사에서 “갈등과 분열로 상처받은 공동체를 회복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직접 언급했다.

유기풍 총장과 최경희 총장의 사임으로 공석인 서강대와 이화여대는 별도 신년사를 내놓지 않았다. 유 전 총장은 남양주캠퍼스 추진에 대한 이사회와의 의견대립 끝에 물러났다. 최 전 총장은 미래라이프대 추진 갈등과 정유라 특혜 의혹 등으로 낙마했다. 서강대는 총장에 선임된 박종구 교수가 다음 달 초 취임하지만 이화여대는 당분간 총장 공백이 지속될 전망이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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