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 배우거나, 다른 길 가거나
한국 따라하는 TCL
미국서 문화·스포츠 마케팅…패널·완제품 수직 계열화
다른 길 걷는 하이센스
레이저 캐스터 TV 내놓고 자체 개발 ULED로 승부
[ 노경목 기자 ] 세계 최대 전자쇼 CES의 프레스콘퍼런스 연단에 선 중국 최고경영자(CEO)들은 촌스러웠다. TV업체 TCL의 리둥성 CEO는 종이 뭉치를 들고나와 한 장씩 넘기며 읽었고, 류훙신 하이센스 CEO는 중국어로 이야기하며 영어 번역을 화면에 띄웠다. 한국과 일본 등 비영어권 국가 경영자가 화면을 보며 영어로 발표하는 관행과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공개된 그들의 전략은 촌스럽지 않았다. 각자의 강점을 십분 발휘해 어떻게 한국 등 선진 주자들과의 격차를 따라잡을지 고민한 흔적이 보였다.
미국 TV시장에서 4위를 달리고 있는 TCL은 2020년 LG전자를 제친다는 목표를 밝혔다. 전략은 한국 기업들이 선진 업체를 따라잡을 때 쓴 방법을 답습하는 것이다. 자회사인 차이나스타(CSOT)가 지난해 11세대 LCD(액정표시장치) 패널 공장 건립에 들어간 TCL은 패널부터 TV 완제품까지 수직계열화된 3개 기업 중 하나다. 나머지 둘은 LG전자와 삼성전자다. 미국에서는 할리우드 배우들의 행사를 후원하고 프로농구팀의 전용구장에 공동 출자하는 등 적극적인 문화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1990년대 스포츠 마케팅에 투자했던 삼성전자가 연상된다. 그러면서 TCL은 삼성전자보다 얇은 퀀텀닷(양자점) TV를 상용화해 시장 점유율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똑같은 TV업체지만 하이센스는 TCL과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백라이트 대신 레이저를 활용하는 ‘레이저 캐스터(laser caster) LCD TV’를 개발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화면을 크게 만들면서도 생산비는 낮아 60인치 이상 TV를 기준으로 한국 업체의 60% 수준에 제작할 수 있다. 독특한 길을 가면서도 중국 TV시장 1위, 세계 시장 4위에 올라설 수 있었던 비결이다. OLED(유기발광다이오드)와 QLED(양자점발광다이오드)가 치열하게 맞붙는 차세대 TV시장에서도 ULED라는 자체 개발 패널로 승부를 볼 예정이다. 제리 류 하이센스 미국법인장은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하이센스 제품은 삼성전자 TV와 큰 차이가 없다는 반응을 얻었다”며 “퀀텀닷 필름 등 특수 필름 4장을 붙이는 ULED도 OLED 등의 화질을 뛰어넘는다”고 말했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의 비제이 바이테스워런 상하이지국장은 “국내 업체들과 치열한 경쟁을 거쳐 살아남은 중국 기업들은 경영대학원에서도 배울 수 없는 스스로의 경영 전략을 만들고 있다”며 “1917년 상하이 푸단대에 중국 첫 경영학 강좌가 개설된 지 100년 만에 여러 의미 있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라스베이거스=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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