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금융부 기자) 올 들어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7층에 정치인, 기업인, 금융인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내로라하는 정치인, 중소·중견기업 최고경영자(CEO)뿐 아니라 자산가 등 VIP(우수고객)들이 연일 우리은행 본점 7층에 방문하고 있는 것이죠. 사연은 이렇습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말 한 달에 걸쳐 7층 구내식당을 리모델링 했습니다. 리모델링을 통해 몇 개의 단독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방음벽을 설치하고 조명, 엔틱 소품 등을 활용해 분위기 있는 공간을 연출했습니다. 비싸진 않지만 고풍스러운 테이블 등을 배치해 여느 도심의 호텔 못지 않은 방을 꾸몄습니다. 경우에 따라 도자기 등 고급 식기를 사용할 수 있으며 한식, 중식, 일식 등 음식 종류도 다양합니다. 한 방에 최대 10여명이 들어가 한 번에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 리모델링은 지난해 9월 말 시행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때문에 시작됐습니다. 김영란법 시행령에 따르면 식사 대접은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을 넘지 못합니다.
이런 기준으로 인해 은행 임직원들의 고민이 많았거든요. 특히 개인·기업 대상 영업을 담당하는 임직원들은 더욱 그랬습니다. 이른바 VIP들을 상대해야 하는데 김영란법에 따라 식사 가격대를 맞추자니 선택할 수 있는 식당 범위가 좁아진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은행 내부에선 ‘그렇다면 본점 내 식당을 이용해보자’라는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합니다. 일반 직원을 위한 구내식당이 상시 운영되고 있다 보니 별도의 요리사를 둘 필요가 없는데다 식자재 마련을 위한 큰 준비도 요구되지 않거든요. (물론 이 공간에 제공되는 식사는 일반 구내식당 메뉴에 비해선 고급입니다.) 다만 저녁엔 이 공간을 별도로 운영하지 않아 점심 시간에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외부인을 본점 구내식당으로 부르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워하던 임원들도 상대방의 반응과 호응이 좋자 차차 이용 빈도를 높여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은행 직원을 대상으로 식사를 준비하는 요리사인만큼 아무래도 식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소스나 양념 간을 약하게 하는 등 ‘집밥’스럽게 음식이 나오거든요.
이 공간을 이용한 외부인들 사이에선 “분위기나 메뉴 수준이 웬만한 호텔급”이라는 호평도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경비 측면으로 봐도 훨씬 절약된다”며 “원가 대비 만족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귀띔하더라고요. 김영란법이라는 계기가 있긴 했지만 실무 직원들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공간인 듯 합니다. (끝)/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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