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개편 지연 우려에 단기급등 부담감도 작용한 듯
'성장주 투자자' 존 리 대표는 대표적 가치주인 은행주 담아
[ 김우섭 기자 ]
저평가 우량주에 투자해 주가가 제법 올랐다고 판단하면 차익을 실현하는 ‘가치 투자의 대명사’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이 삼성전자 지분을 모두 정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전자는 더 이상 가치주가 아니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단기간 주가가 급등한 데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삼성전자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늦춰질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8일 펀드정보업체 제로인에 따르면 지난해 11월1일 기준으로 한국투자밸류10년펀드에 삼성전자는 단 한 주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2015년 11월 이 펀드의 삼성전자 비중은 15.99%였고 작년 상반기에도 10% 안팎을 유지했다. 이 부사장은 “정확한 시기를 밝힌 순 없지만 삼성전자 주가가 160만원대를 넘어선 뒤 모두 팔았다”고 말했다.
이 부사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삼성전자 전문가다. 밸류10년펀드에 삼성전자 주식을 처음 담은 것은 2010년 10월. 7~8월 80만원을 넘었던 삼성전자 주가가 70만원대 초반으로 내려온 시기다. 애플의 아이폰 공세로 ‘위기론’이 불거질 당시 ‘경쟁력 대비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는 판단에 삼성전자를 담기 시작했다. 이후 갤럭시S 시리즈의 연이은 성공으로 2013년 2월 주가가 150만원으로 치솟았고 이 부사장의 ‘주가’도 덩달아 올랐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삼성전자는 여전히 저평가됐다”는 판단을 유지했던 이 부사장이 갑자기 삼성전자 주식을 대거 판 이유는 뭘까. 1차적인 이유는 단기 급등에 따른 부담이다. 지난해 삼성전자 주가는 43.01% 올랐다. 현재 삼성전자의 주가순이익비율(PER)은 16.47배로 국내 동일 업종의 평균 PER 12.72배보다 높다. ‘좋은 주식이라도 주가가 높다고 판단되면 가치주가 아니다’는 생각을 가진 이 부사장이 계속 보유하기엔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지난해 9월엔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 화재 사고도 터졌다. 이 부사장은 “사고 이후 삼성전자가 만든 프리미엄폰에 대해 시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며 “갤럭시S8 결과에 따라 주가가 출렁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삼성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특검 수사를 받는 상황에까지 내몰린 것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는 전언이다. 이 부사장은 평소 삼성전자가 인적분할 등 지배구조 개편에 나설 경우 주가가 큰 폭으로 뛰어오를 것이라고 강조해왔지만 이번 사태의 파장이 워낙 커 삼성이 당장 지배구조를 손질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기존 판단을 바꿨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부사장이 삼성전자 주식을 처분한 이후 주가는 계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 6일 181만원에 장을 마감했다.
이 부사장 외에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도 지난해 투자폴리오에 큰 변화를 준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가치주로 분류되는 은행주 비중을 늘렸다. 작년 11월1일 기준으로 메리츠코리아는 하나금융지주 편입 비중을 1.86%까지 늘렸다. 메리츠코리아 포트폴리오에 담긴 종목 71개의 펀드 내 평균 비중이 1.38%인 점을 감안하면 높은 편이다. 2015년 11월 기준으로 은행주는 단 한 주도 담지 않았던 것과 대조적이다. 존 리 대표는 “올해 미국 금리 인상을 앞두고 은행주의 수익성이 좋아질 것으로 판단해 비중을 확대했다”며 “펀드 전체의 투자 전략이 바뀐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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