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비관론도 객관적 근거가 있다면 귀담아들어야 한다. 그러나 비관론이란 것들이 대개는 주관적 설문조사에 의해 형성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대표적인 게 기업 경기실사지수(BSI)나 소비자체감경기지수(CSI)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어제 발표한 제조업 1분기 BSI가 외환위기 때만큼이나 나쁘다고 모든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BSI와 CSI는 경기가 좋을 때도 100을 넘긴 적이 거의 없다. 체감경기란 것은 약간의 악재에도 확 나빠지는 게 보통이다. 반면 일부 업종들은 되레 호황이고 상장사 실적이 사상 최대라는 객관적 사실은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부패 증거로 제시되는 부패인식지수(CPI)도 마찬가지다. 국제투명성기구라는 NGO가 발표하는 이 지수에서 한국은 지난해 167개국 중 37위였다. OECD 하위권이다. 그러나 이 역시 각국의 기업인 설문 등을 토대로 작성된다. 특기할 점은 부패한 나라인데 정작 뇌물을 요구받은 경험을 묻는 질문에 한국인의 3%만 그렇다고 답했다. 가장 청렴한 국가라는 덴마크 핀란드 뉴질랜드 등처럼 5% 미만이며 미국 영국보다도 낮다. 국민권익위원회의 부패인식도 종합분석에서도 국민 53.7%가 사회 전반이 부패했다고 응답했지만 외국인은 그 절반(27.1%)만 동의했다. ‘나는 깨끗한데 남들은 부패하다’는 자기중심적 사고가 뇌리에 박힌 게 아닌가 싶다.
특히 국민행복지수는 설문조사와 계량화된 지표 간의 괴리가 더욱 극명하다. 갤럽의 행복감 조사에서 한국은 143개국 중 118위다. 경제규모는 11위인데 국민이 불행한 ‘헬조선’의 근거로 자주 인용된다. 하지만 갤럽 조사는 ‘어제 잘 쉬었나, 많이 웃었나’ 등 5가지 설문의 응답률로 나라별 순위를 매긴다. 지극히 주관적 조사여서 상위권은 낙천적인 중남미 국가 일색이다. 반대로 유엔개발계획(UNDP)이 수명 의료 교육 복지 등 객관적 지표를 토대로 삶의 질을 매긴 순위에서 한국은 187개국 중 15위다. 그런데도 한국인은 불행하다는 주장만 넘쳐난다.
우리 사회에선 언제부턴가 경제는 나빠지고, 사회는 부패하고, 국민은 불행하다고 해야만 정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객관적 근거를 들어 그 반대를 말하면 ‘미친 소리’ 취급하기 일쑤다. 요즘 같으면 국정공백 속에 잘 풀릴 리 없다는 부정 심리도 작용할 것이다. ‘점점 나빠진다’는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객관적 지표도 외면하는 사회가 정상일 수 없다. 우리 스스로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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