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모 정치부 기자) 국회의 탄핵으로 한달 이상 관저에 칩거 중인 박근혜 대통령. 지난해 12월 9일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참모들로부터 “이제 좀 쉬셔야 합니다”라고 권유받을 정도로 심신이 지쳐 있었다. 10일 박 대통령의 근황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청와대 핵심 참모는 “건강하시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요즘 클라우스 슈밥의 저서 ‘제4차 산업혁명’을 읽고 있다”고 전했다.
책의 저자인 슈밥은 세계경제포럼(WEF·일명 다보스포럼) 창립자이자 회장이다. 박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다. 박 대통령은 2014년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했을 당시 슈밥 회장과 대담을 했다. 지난해 9월 슈밥 회장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청와대에서 접견하기도 했다.
지난해 4월 한국어로 번역된 제4차 산업혁명(원제: The Fourth IndustrialRevolution)은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기술을 물리학 생물학 디지털 등의 분야 별로 소개하며서 4차 산업혁명이 국가, 사회, 기업, 개인 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기술로는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로봇 자율주행자동차 비트코인 등을 주로 꼽았다.
청와대가 직무정지돼 관저에 사실상 유폐된 박 대통령의 독서목록을 공개한 것을 두고 여러 정치적 해석이 나온다. 4차 산업혁명은 박 대통령이 탄핵 직전까지 강조해왔던 경제분야 국정 아젠다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국회 탄핵 전에,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회의 때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기술혁신은 4차 산업혁명에 견줄 만큼 산업 전반에 혁신을 가속화할 것”이라며 한국이 4차 산업혁명의 선두주자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정치관의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본인의 운명을 가를 헌재의 탄핵심판을 앞두고 복잡하고 어려운 4차 산업혁명과 같은 어려운 책을 읽고 있다고 청와대 공개한 것은 국정현안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고 풀이했다.
물론 청와대가 박 대통령의 독서 목록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여름 휴가 때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시 경희대 부교수의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을 탐독했다고 소개하면서 출입기자들에게 책을 선물로 돌리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4년 탄핵 정국 때 독서 목록을 공개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 고뇌를 그린 역사소설 ‘칼의 노래’를 다시 꺼내 읽었다. 2001년 출간 직후엔 독자들의 반응이 크게 없었던 김훈 씨의 칼의 노래는 노 전 대통령이 읽은 책으로 알려지면서 2004년에만 50만 부 가량 팔렸다.(끝) /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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