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대착오적 패권주의에 한·미 포퓰리즘 맞붙으면 위기 불 보듯
안보와 외교는 최악 상황 전제해야"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몇 명이 중국으로 날아가 환대를 받았다고 한다. 한국 국회가 정부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을 뒤집어 줄 수도 있다는 언질을 줬다니 오죽했겠는가. 그 당 대선주자라는 문재인 전 대표는 이미 사드 문제를 차기 정부로 넘기겠다고 공언한 터다.
그 사람들은 중국의 경제 제재를 풀려고 백방으로 뛰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의 방중 이후 비정상적인 제재는 오히려 늘었을 뿐이다. ‘친중·사대외교’라는 비난이 괜히 나오겠는가.
미국은 지금도 사드 배치를 ‘한·미동맹의 상징’이라며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야당은 다르다. 집권하면 사드 재검토는 물론, 미국보다 북한에 먼저 가겠다는 문 전 대표다. 그 당의 또 다른 대선주자 이재명 성남시장은 이번 기회에 주한미군 철수를 각오하고 자주국방 정책을 수립하자고 말한다.
며칠 뒤면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다. 주한미군의 방위비 부담액을 올리지 못하면 철수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아온 그다. 국내에서야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달라질 것이라며 미군 철수는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꼭 그럴까.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는 얼마 전 맥스 부트 미국 대외관계협의회(CFR) 연구원의 ‘트럼프의 아시아 중심 전략’이라는 기고문을 실었다. 트럼프가 방위비 분담금 등으로 동맹국의 반감을 불러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게 골자다. 우리로선 나쁜 얘기가 아니다. 그런데 걱정스러운 내용이 있다. 문 전 대표나 이 시장 중 한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트럼프가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면 한국은 미군이 철수하도록 내버려둘 수 있다고 우려한 부분이다. 포퓰리스트들의 치킨게임이다. 미군이 빠져나간 한반도, 과연 바람직할까.
카터 정부 시절 국가안보 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그의 저서 《전략적 비전》에서 이런 가정을 했다. 미국이 쇠퇴해서 세계 질서가 재편될 경우다. 소위 ‘포스트 아메리카나’ 시대에 가장 위험한 나라는 어디가 될까. 그는 조지아와 대만에 이어 한국을 세 번째로 위험한 나라로 꼽았다.
그런 상황을 맞으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는 한국의 선택은 “중국의 지역적 우위를 받아들이고 핵무장을 한 북한에 대한 고삐를 잡기 위해 중국에 더 의존하거나, 아니면 평양과 베이징의 침략에 대한 우려와 민주적 가치를 공유하는 일본과 역사적 반감을 무릅쓰고 관계를 강화해야 하는 길밖에 없다”고 잘라 말한다. 참 터무니없는 형국이다.
물론 브레진스키 주장의 전제인 미국의 쇠퇴 가능성은 당분간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트럼프의 미국이 발을 뺄 가능성마저 없는 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상황은 브레진스키 가정과 같아진다.
사실 미국의 전략에서 한국 중요도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미국의 주적은 분명히 중국이다.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필요했지만 중국은 다르다. 일본-필리핀-베트남-인도로 이어지는 방어선만으로도 중국의 해양 진출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 한국이 싫다는 데 굳이 전력을 남겨둘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필리핀 국회가 앞장서 내쫓은 수비크만의 미군이다. 하지만 미군이 철수하자 중국은 수비크 앞바다의 스카보로섬을 일방적으로 점령했다. 수비크에선 200㎞에 불과하지만 중국 본토에서는 1200㎞나 떨어진 곳이다. 독수리(미국)를 쫓아냈더니 용(중국)이 쳐들어 왔다고 개탄했다는 필리핀이다. 오죽 불안했으면 2014년 필리핀을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에게 8개 기지를 10년간 마음껏 쓰라고 내줬을까.
중국군이 서해에서 대규모 실탄사격 훈련을 하더니 며칠 전에는 군용기 10여대를 동원해 이어도 인근 한국 방공식별구역을 4~5시간이나 누볐다고 한다. 차기 정권을 잡은 양 행동하는 정당이 친중·사대외교나 하고 다니는데 중국이 거리낄 게 있겠는가. 미국과 일본이 제안한 한·미·일 대잠수함 합동 전투훈련은 중국의 반발을 우려한 한국의 반대로 무산된 시점이다.
최악의 안보 상황을 염두에 두고 힘의 균형을 이루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게 외교의 정석이다. 개탄스럽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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