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락, 시흥에 250억 새 공장
고영테크, 매출 연 20% 안팎 성장
에이스기계, 포장박스 접착 자동화
아프로알앤디, 5년새 설비 4배 확장
[ 김낙훈 기자 ] 독일의 히든챔피언들은 아무리 불황이 닥쳐와도 연구개발과 시설 투자를 줄이지 않는다. 미래 먹거리 창출의 원동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매출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율이 포천 1000대 기업은 평균 3.6%지만 독일 히든챔피언은 6%에 이른다. 4차 산업혁명을 선점하기 위한 전쟁이 점화된 요즘엔 이 비율이 10%대에 이르는 히든챔피언도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국내 산업단지에도 이런 기업들이 있다. 이들은 오히려 불황일수록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고 믿는다.
2016년 ‘KICOX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선정된 남동산업단지의 유니락(사장 유명호)이 한 예다. 이 회사는 2016년 매출이 320억원(추정치)으로 전년보다 27.5% 늘어나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2017년 매출 목표는 400억원이다. 관이음새 전문업체 유니락은 올해 경기 시흥시 소재 산업단지인 시화MTV(멀티테크노밸리)에 총 250억원을 투자해 새 공장을 건설한다.
유명호 사장은 “부지 2만㎡, 연건평 1만1000여㎡ 규모의 공장을 짓고 첨단설비도 갖추겠다”고 밝혔다. 그는 “설비 투자와 신제품에 대한 연구개발을 강화해 매출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신제품 연구개발에 집중할 예정이다. 유니락은 튜브 피팅과 밸브 등 초정밀 관이음새 전문 제조업체다. 튜브 피팅은 튜브와 튜브를 연결하는 부품으로 내부 물질이 새어나오면 안 되기 때문에 높은 정밀도가 요구된다. 이 회사는 재질 형태 크기별로 총 6000여가지를 생산한다. 석유·가스·석유화학 플랜트, 발전소, 조선소, 반도체 및 LCD(액정표시장치) 공장에 공급하고 있다. 수출 국가는 미국 등 40여개국에 이른다. 유 사장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을 만한 신제품을 개발 중”이라며 “불황 때 미래 먹거리를 준비해야 지속 성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디지털단지에 있는 ‘3차원 자동화 검사장비’ 세계 1위 기업인 고영테크놀러지도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업체다. 이 회사의 전략은 남들이 따라오지 못하게 ‘두 걸음 앞서가는 제품 개발’이다. 불황으로 매출이 줄어든 기업이 속속 나타나고 있는데도 이 회사는 작년 9월 말까지 매출이 125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8% 늘었다. 거의 매년 20% 안팎의 매출 신장세를 기록 중이다. 이 회사의 원동력은 연구개발에 주력해 차세대 제품을 선점하는 전략이다. 이 회사가 개발하는 제품은 대부분 국내외에서 첫선을 보이는 제품들이다. 원천기술로 승부를 걸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첨단제품 선점 전략을 보자. 이 회사는 지난해 12월 국내 최초로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뇌수술용 의료로봇’에 대한 제조 허가를 획득했다. 뇌수술용 의료로봇은 △수술침대에 부착할 수 있도록 소형화된 로봇 플랫폼 △3D 인체 스캔 센서 △수술 내비게이션 소프트웨어로 구성돼 있다. 수술 전 촬영한 컴퓨터단층촬영(CT) 및 자기공명영상(MRI)을 기반으로 자사의 3D 센서기술과 로봇시스템을 이용, 실시간으로 환부와 수술도구 위치를 추적한다. 이를 통해 수술도구의 위치 및 자세를 자동으로 지도해주는 시스템이다. 고영은 2011년부터 산업통상자원부 국책과제에 국내 유명 대학병원과 공동으로 참여하며 의료로봇 기술개발을 시작해 5년 만에 성공했다.
이 회사의 고광일 사장은 “3차원 측정검사 분야에서 축적한 메카트로닉스 및 측정기술을 접목, 혁신적인 뇌수술용 로봇을 개발했다”며 “세계 최초의 침대 부착형 고정밀 수술로봇을 통해 수술 성공 확률을 높이고, 어려운 신경외과 수술 보급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영은 국내외 연구소를 통해 연구개발에 나서고 있다. 국내에 약 150명의 연구개발 인력을 두고 있다. 전체 종업원의 약 40%에 이르며 이와는 별도로 올 들어 3개의 인공지능 및 스마트팩토리 관련 연구소를 미국과 KAIST에 설립했다. 기존의 주력 제품인 3차원 납도포 검사장비도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이를 1800개 기업에 공급하고 있다.
이 회사처럼 신기술 신제품을 개발하며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는 기업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시화MTV 소재 ‘포장박스 자동접착기’ 생산업체인 에이스기계 역시 연구개발을 통해 고부가가치 제품을 개발했다. 이 회사가 만드는 제품은 길이가 13~25m에 이르는 자동화설비다. 모서리가 재단이 된 빳빳한 판지를 접고 접착해 상자를 만들어준다. 주로 화장품 음료수 과자 등의 상자를 만드는 데 쓰인다. 이 제품을 본 바이어들은 과연 “에이스”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릴 정도다.
이 회사의 이철 사장은 “작업준비 시간을 대폭 줄여 생산성을 높인 데다 독일 산업디자인업체에 의뢰해 미려한 디자인으로 고급화 전략을 쓴 펼친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고급화 전략을 편 결과 유럽과 미국의 빅바이어들에게도 납품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이 회사는 수출에 적극 나섰지만 빅바이어들을 뚫지 못했다.
이들은 주로 유럽 제품만을 찾았기 때문이다. 에이스기계는 기존 시화산업단지 공장을 2014년 초 시화MTV로 이전하면서 과감하게 고급화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독일과 스위스 설비 등 비싼 장비를 과감하게 사들였고 연구개발능력도 확충했다. 특히 독일 산업디자인 전문업체에 의뢰해 디자인도 미려하게 바꿨다. 이 사장은 기계도 예쁘고 효율적으로 디자인해야 팔린다는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파일로트피쉬라는 디자인 업체에 의뢰해 기계 디자인도 확 바꿨다. 파일로트피쉬는 베를린 뮌헨 암스테르담 등지에 사무소를 두고 있는 전략적 디자인 및 이노베이션 컨설팅 업체로, 보쉬 지멘스 등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국내 굴지의 전자업체들도 파일로트피쉬의 고객이다. 반응은 놀라웠다.
이 사장은 “작년 6월 독일에서 열린 세계 최대 인쇄전시회인 ‘뒤셀도르프국제인쇄전시회(drupa)’에 신제품을 전시한 결과 바이어들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고 말했다. 성능이 뛰어난 데다 맵시 있는 디자인으로 변신하니 주문이 이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기계도 예뻐야 잘 팔리는 시대가 온 것이다. 2억~5억원이던 대당 가격은 2억~15억원대로 뛰었다. 최고 가격이 3배로 오른 것이다.
서울디지털단지에 있는 아프로알앤디는 적극적으로 사업 확대에 나서고 있다. 자동차부품과 전자부품 불량 여부를 검사하는 이 회사는 시험검사 영역을 넓히며 최근 5년 새 설비를 4배 확장했다. 조만간 약 80억원을 투자해 첨단 검사장비와 연구설비를 늘릴 예정이다. 이 회사의 김형태 사장은 “구로에서는 반도체 및 첨단 재료 분석을 위한 설비투자를 늘렸고 성남공단에서는 부품 신뢰성 테스트 장비에 대한 투자를 확대했는데 더 이상 공간을 확보할 수 없어 서울 인근 산업단지에 공장을 확보해 전자파 관련 시험설비도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홍순영 한성대 교수는 “아무리 불황이라도 연구개발의 끈을 놓지 않아야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며 “독일의 강소기업이 강한 것은 바로 이런 연구개발과 전문화, 글로벌 전략이 어우러진 결과”라고 말했다.
김낙훈 중소기업 전문기자 nhk@hankyung.com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