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질책에 마지못해
독대 후 일사천리 승마 지원
정유라 지원 거부 임원 교체
합병 청탁·대가라는 특검
국민연금 합병 찬성과 엮어
법조계 "삼성 해명 설득력"
[ 김현석 기자 ] 박영수 특별검사가 12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피의자로 소환했다.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 성사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부정 청탁하고, 그 대가로 최순실 씨 측에 금전 지원을 했다는 혐의를 두고 있어서다. 박 대통령에게 ‘제3자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느냐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혐의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최씨 측에 대한 지원 시점을 따져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라고 주장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결정되고 삼성이 최씨 측에 돈을 지원한 2015년,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물산 합병 전엔 최씨 지원 안해
삼성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결의한 건 2015년 5월26일이다. 이후 미국의 사모펀드 엘리엇이 반대하면서 파란을 겪었다. 다행히 국민 여론은 삼성에 우호적으로 움직였고 7월10일 두 회사 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이 내부 투자위원회를 열어 합병에 찬성키로 결정했다. 7월17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주총회에선 합병안이 무사히 통과했다.
그 당시까지 삼성은 최씨 일가에 대한 지원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이 2015년 3월 말 대한승마협회장을 맡았고 이후 최씨 측근인 박원오 승마협회 전무가 ‘정유라 지원 로드맵’을 만들었지만 삼성 측이 파견한 이영국 승마협회 부회장(삼성전자 상무), 권오택 총무이사(삼성전자 부장) 등이 이를 거부했다.
그러던 삼성이 갑자기 최씨 일가 지원을 시작한 건 박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청와대로 부른 직후부터다. 박 대통령은 7월20일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독대 자리를 마련할 것을 지시했고 닷새 뒤인 25일 청와대 인근 안가에서 이 부회장을 만났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삼성이 승마협회를 제대로 지원하지 않고 있다”며 강하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독대 전날 안 수석에게 이영국 부회장 등의 실명을 거론하며 ‘이들이 예산 지원과 사업 추진을 하지 않아 문제가 되니 교체하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은 박 대통령으로부터 질책을 받은 다음날인 26일 박상진 사장 등과 회의를 열었고, 이영국 부회장과 권오택 총무이사를 경질토록 했다. 박 사장은 27일 급히 독일로 떠나 최씨 측과 지원방안 등을 협의했다. 그리고 한 달 뒤인 8월26일 박 사장은 정유라 씨 등 승마 선수 6명에게 최대 200억원을 지원하는 내용의 계약을 코레스포츠와 체결했다. 삼성전자가 처음 돈을 입금한 건 그로부터 20여일 뒤인 9월14일이다. 최씨 조카 장시호 씨가 주도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2015년 10월부터 작년 3월까지 16억2800만원을 대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최씨 지원은 대통령 질책 때문”
삼성은 이처럼 박 대통령의 압박 때문에 최씨 일가를 지원한 것이라며 ‘공갈·강요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삼성이 최씨 일가를 지원한 정황을 시계열로 따져보면 이런 해명에 설득력이 있다는 게 법조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최종 확정된 건 7월17일이고 대통령에게 ‘승마를 지원 안 한다’고 질책당한 건 7월25일”이라며 “특검은 이를 뒤집어 삼성이 돈을 주고 합병에 도움을 받았다고 끼워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정황은 이 부회장과 박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이 부회장은 작년 12월 최순실 게이트 국회 청문회에서 승마협회 지원 이유를 추궁받자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는 ‘박 대통령의 질책’을 언급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내가 삼성 합병에 개입됐다는 것은 완전히 (특검이) 엮은 것”이라며 “합병 찬성은 국민연금의 정책적 판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특검은 발생 순서를 뒤집어 삼성의 최씨 지원이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과 연관됐다고 보고 있다. 이를 입증해 이 부회장과 박 대통령을 제3자 뇌물죄로 기소하겠다는 것이다. 삼성 관계자는 “이영국 상무 등이 2015년 7월 말 경질된 건 최씨 측의 정유라 지원 로드맵을 여러 번 거부했기 때문”이라며 “이는 삼성이 대통령 독대 전까지 승마 지원에 관심이 없었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설명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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