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세계화가 불평등 조장? 아시아 빈곤층이 최대 수혜자"

입력 2017-01-12 17:28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

브랑코 밀라노비치 지음 / 서정아 옮김 / 21세기북스 / 364쪽 / 1만8000원

밀라노비치의 글로벌 불평등론

1988~2008년 '세계화 절정기'
신흥국 국민, 소득증가율 최고
부자국가 중하위층 가장 낮아
산업혁명 이후 불평등 첫 감소

국가간 소득 불평등 줄이려면 인구이동 장벽 대폭 낮춰야



[ 송태형 기자 ]
경제학자 브랑코 밀라노비치는 2012년 발표한 연구논문에 특이한 모양의 그래프를 실었다. 세계화의 이득이 어떻게 분배됐는지를 나타내는 그래프로, 코끼리가 코를 들어올린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코끼리 곡선(elephant curve)’이란 이름이 붙었다.

가로축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표시한 맨 왼쪽부터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자리 잡은 맨 오른쪽까지 세계 소득분포를 나타낸다. 각국 통화의 구매력을 달러로 평가한 지수로 환산한 1인당 세후 가계소득을 기준으로 사람들의 소득 등급을 백분위로 나눴다. 세로축은 1988~2008년 실질소득의 누적 증가율을 나타낸다. 이 기간은 베를린 장벽 붕괴부터 세계 금융위기까지의 기간과 일치한다. ‘세계화 절정기’와도 겹친다.

소득 증가율이 가장 높게 나타난 지점은 소득분포의 중간값 근처에 있는 40~60분위와 최상위 99~100분위다. 40~60분위의 십중팔구는 중국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신흥국가 국민이다. 99~100분위는 세계 각국의 최고 부유층으로, 절반이 미국인이다. 증가율이 가장 낮은 지점은 75~90분위. 대다수가 고소득 국가의 중하위층이다. 밀라노비치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세계화의 수혜자와 비(非)수혜자를 가른다. 최대 승자는 아시아의 빈곤층과 중간계층, 최대 패자는 부자 나라들의 중하위층이다.

밀라노비치는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에서 ‘코끼리 곡선’을 시작으로 산업혁명 이전부터 현재까지 수백년간 글로벌 불평등의 양상이 어떤 요인으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설명한다. 지난해 4월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의 원제는 ‘글로벌 불평등(global inequality)’이다.

세계화의 이득이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은 ‘절정기’에 글로벌 불평등도 심화됐을까. 저자에 따르면 국가 내 소득 불평등과 국가 간 중위소득 격차를 합산한 글로벌 불평등은 이 기간에 정점을 찍고 감소 추세로 반전됐다. 소득 분배의 불평등 수준을 수치화한 세계 지니계수는 1988년 0.722에서 2008년 0.705, 2011년 0.67로 감소했다. 산업혁명 이후 국가 간 소득 격차가 벌어지며 줄곧 증가하던 글로벌 불평등 지수가 소폭 낮아진 것이다. 중국과 인도, 동남아시아의 성장 등으로 아시아 중위층과 서구 중하위층의 소득 격차가 좁혀진 결과다.

글로벌 수준이 아니라 서구나 전통 선진국의 불평등 수준만 놓고 보면 양상은 달라진다. 산업화 이후 19세기 후반 또는 20세기 초반 정점을 찍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낮아지던 소득 불평등이 1980년대 이후 가파르게 높아지고 있다. 이 사실은 산업화 초기 소득 불평등이 높아지다가 경제가 성숙함에 따라 다시 낮아진다는 사이먼 쿠즈네츠의 ‘역(逆)U자 가설’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21세기 자본》의 토마 피케티는 이에 대해 1970년대까지 이어진 불평등 감소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예외적인 현상이며 실질적인 불평등 추세는 쿠즈네츠 가설과 반대로 U자형을 그린다고 주장했다.

저자의 설명은 다르다. 쿠즈네츠 가설에 불평등이 기술, 개방성, 정책 등 경제적 동인에 따라 오르내린다는 ‘파동’ 개념을 도입한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1차 쿠즈네츠 파동은 ‘산업혁명’으로, 2차 파동은 1980년대 ‘디지털 기술 혁명’으로 시작됐다. 중국의 불평등은 현재 1차 파동의 정점을 지난 감소 곡선에 있고, 미국은 2차 파동의 정점을 향한 증가 곡선에 있다.

2차 파동 시작으로 높아지는 불평등은 서구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자체를 위협할 것인가. 저자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다. 자유로운 노동, 사유 자본, 분권화된 조정, 이윤 추구로 이뤄진 자본주의를 대체할 대안이 없다. ‘지역’으로 회귀하는 탈세계화는 경제성장의 주요 요인인 노동 분업을 폐지하는 결과를 낳으므로 이뤄질 수 없다. 러시아와 중국의 국가자본주의 체제에서도 사적인 이윤 동기와 민간 기업이 가장 우위에 있다.

저자는 21세기 국가 내 소득 불평등과 글로벌 불평등을 축소하기 위해 필요한 제안을 한다. 요약하면 이렇다. 국가 내 불평등을 완화하려면 세금과 사회적 이전을 늘리는 것보다 교육과 자산 수준으로 이뤄진 기초자본의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 모두가 공평하게 질 높은 교육을 받고, 자산 소유권을 보다 광범위하게 분산시키는 것이다.

글로벌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선 아프리카, 아시아 등 저소득 국가의 성장 가속화와 이민 장벽의 완화가 필요하다. 경제 성장은 불평등을 줄이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이민 장벽 완화에는 논란의 소지가 많다. 저자는 이민 확대를 위해 일터에서 차별화하고 공민권을 제한하는 정책도 용인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프와 수치, 생소한 용어가 많이 나오는 학구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잘 짜인 구성과 상세한 설명으로 독해가 그리 어렵지 않다. 저자의 주장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글로벌 차원에서 불평등과 관련한 경제·정치·사회적 요인들을 통찰하는 지력(知力)을 키울 수 있는 책이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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