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등 통상압박은 한국에 치명적
부처 간 협력·소통으로 대비해야"
최병일 <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
도널드 트럼프가 오는 20일 백악관에 입성한다. 그가 이끄는 미국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그런 미국이 아닐 듯하다. 통상분야는 그 논란과 변화의 중심에 있다. 그가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미국 중서부 지역 백인 노동자들의 몰표 덕분이었다.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시켜준 것은 미국이 저지른 가장 끔찍한 실수”였고, “중국은 온갖 불공정 무역행위로 일자리를 훔쳐가고 있다”는 그의 막말에 그들은 열광했다. “중국에 45% 관세를 물리겠다”, “일자리를 해외로 이전하는 미국 기업에는 불이익을 주겠다”는 그의 쾌도난마식 공언(公言)에서 그들은 메시아를 보았다.
과거 역사를 들먹이면서 혹은 정치이론에 기대 대선 후보로서의 공약과 대통령으로서의 이행은 달랐고 다를 수밖에 없으며, 트럼프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은 어긋나고 있다. 그의 보호주의 수사가 약화될 것이라던 일각의 예측은 어긋났던 대선 예측처럼 또 어긋난 희망사항으로 그칠 전망이다. 아직 취임식도 하지 않은 대통령 당선자 신분임에도 이미 트럼프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멕시코로 공장을 이전하려는 민간기업 캐리어를 직접 압박해 이전을 막았다. 그의 으름장에 포드 역시 멕시코로의 이전 계획을 백지화했다. 그 압박은 미국 기업에만 그치지 않는다. 도요타자동차에도 가해졌고, 다음날 도요타의 주가는 급락했다.
상황이 이처럼 녹록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당장 한국에 통상압력이 밀어닥치지는 않을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중국이 미국의 최우선 순위라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나라인 것을 잊으면 곤란하다. 1980년대 후반 미국의 엄청난 무역수지 적자를 해소하려고 만든 공세적 통상법(1988 종합무역법)의 최우선 순위 국가는 일본이었지만 한국도 통상공세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궁금하면 ‘슈퍼 301조’를 찾아보시라. 현명한 정부라면 미국의 최우선 순위는 중국이니까 당장 한국엔 통상공세의 압박이 밀려오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을 하더라도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다. “미국에서 만들고,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주문은 트럼프 정부의 ‘사도신경 제1조’가 될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그의 팔 비틀기식 공세는 막가파식 일방통행이지만 비난만으로는 헤쳐갈 수 없다.
환율조작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 관련 미국의 공세는 당장이라도 시작될 수 있다. 미국의 통상협상을 주도하는 무역대표부 수장은 대통령 취임 후에나 임명하는 자리였지만, 이미 트럼프는 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1980년대 ‘통상전사’를 임명했다. 환율 관련 통상공세에 대해 그간 한국 정부는 지나치게 차거나 지나치게 뜨거웠다. 수출을 늘리기 위해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저평가하는 정책을 해왔느냐는 것이 논란의 핵심인데 과거 정부의 일부 당국자들은 환율주권론 운운하며 마치 저평가가 애국인 듯한 시대착오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지금의 정책당국에서는 아예 환율과 통상을 연계하는 논의 자체를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환율조작 통상공세가 본격화되면 정부 부처 간 협조와 소통이 이뤄질까라는 의문은 필자만의 걱정거리였으면 좋겠다. 한·중 FTA 체결에도 불구하고, ‘사드’ 배치에 불만을 품고 한국을 상대로 작정하고 내지르는 중국의 차별조치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일진대….
트럼프의 미국은 규칙중심 경제에서 거래의 법칙이 지배하는 경제로 변신할 것이다. 경제 참여자들이 사전에 합의한 규칙에 따라 경쟁을 하고 승패가 결정되면 수용하는 경제체제가 아닌, 정부가 채찍과 당근을 내세워 그때 그때의 상황논리에 따라 기업과 거래를 압박하는 경제체제로 전락할 우려가 커졌다. 그 미국과 거래할 준비가 우리는 돼 있는가.
최병일 <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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