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해운업계 원로 정남돈 선생이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 이후 본지 기자에 보내온 글입니다. 정남돈 선생은 1990년 조양상선이 국내 최초로 세계일주항로를 개척할 때 개발팀장을 맡아 활약했고, 이후 세양선박 대표 등을 지냈습니다. 모바일한경은 앞으로 정 선생이 보내온 해운업 관련 기고를 연재할 계획입니다. 기고문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3. 상황 파악
한국의 항구는 1980년대까지 거의 일본에 종속돼 있었다. 수출업체들은 피더 물류비를 지불해가며 일본에서 환적했다. 그들 항구만 벼락같이 키워줬다. 만약 한 컨테이너를 피더할 때마다 드는 650달러를 절감했더라면 당시 노임이 싼 덕택으로 제조업에서 제법 많은 부자들이 탄생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싼 노임의 혜택을 피더 물류비로 다 소진해 버렸다. 정부가 해운업에 대한 안목이 전혀 없었던 탓이다. 70년대에 컨테이너 부두는 우리 힘으로는 만들기 버거운 첨단 설계사업, 외자도입 사업이었다.
아무리 작은 공장이라도 한번 문을 닫으면 인력 모두가 흩어진다. 시황이 좋더라도 다시 모여 재생하기가 힘들다. 알맹이 없던 식민영토를 일으키고 나니, 그 동안 숨죽였던 중국이 핑퐁외교로 깨어나 무역으로 그들 영역을 넓혔다. 중국의 할인·덤핑공세에 몰려 또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으로 옮겨가며 기업을 유지하고자 고생을 해 왔는데 이젠 한진해운의 몰락으로 해상운임에서 한방 얻어맞았다. 여러 기업들이 한계상황에서 또 다시 결단의 시기가 왔다고 고민한다.
무역의 판도가 해상운임 인상으로 바뀌면 중소기업들의 수익체계 근본이 흔들린다. 수출뿐 아니라 수입에서도 공급체인에 불안을 느껴 당황할 수밖에 없다. 특히 텍스타일이나 가전제품, 가정 생필품 등은 가격에 아주 민감한 품목이다. 즉 개수당, 톤당 몇 센트가 수출입의 성사를 좌우한다. 거대한 메가 컨테이너선의 염가 운임이 얼마나 그들의 생존에 중요한지 모른다. 톤당 3달러는 이들에게는 거금이다. 이런 비용인상 요인이 발생했으니 그들도 지금쯤 진퇴양란에 직면했을 것이다.
현장에서 우리 내부만 쳐다보면 상황파악을 옳게 할 수 없다. 문제를 일으키는 변수들은 결국 외부, 국제적인 시장판도의 변화에서 온다. 해운산업의 존폐를 금융에서만 보면 이번처럼 그냥 문 닫으면 간단히 해결된다. 그러나 이후 벌어지는 파급효과는 상상외로 월등히 큰 것이다. 정부의 발표가 고민하는 수출업자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과거 공단의 심각한 파업은 부산항 컨테이너 부두 운영이 시작되자 저절로 해결됐다. 물류비가 줄어드는 컨테이너선이 직접기항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로 인한 수출 증대효과가 오늘날 한국 경제의 초석이 됐다. 지난 쓰라린 경험이 한진해운의 몰락을 통해 고난의 반복을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다. 우리 배가 없으면 고가 운임으로 외국배에 실어야 하는 처지 말이다.
4. 결론
부산신항은 더 변신해야하는데 거꾸로 우리 배는 뜸해졌다. 관문을 확고히 정착시켜 선전하는 일이 남았는데 배도 없고 부두도 고치는 중이다. 그러다 이런 일이 벌어져 버렸다. 마치 부도난 건설 현장처럼 중간에 멈춰 서 버린 것이다.
조선업도, 해운업도, 무역업자도 살려야 하는 이 거대한 중책을 해결하는 최대 공약수는 무엇일까? 필자가 보기에, 정부가 첨단 메가선을 건조해 조속히 모자라는 선복을 바다에 채우는 것뿐이다. 국적선대로 무장해야 해상물류 플랫폼이 흔들리지 않고 우리만의 수출입 개방통로를 지킬 수 있다.
그래야 앞서 달리는 선진국 경제에 더 이상 뒤처지지 않고 추월도 가능한 것이다. 마치 우리 여자 스피드 스케이트가 세계 1등을 계속 유지하듯 말이다. 1등의 저력은 현상을 유지하며 균형감각으로 벌리는 순발력의 작전이 아닌가. 삼성 LG의 TV를 보라! 우리 민족이지만 멋지지 않는가? 다른 개벽은 결코 없다. 실수로 해양물류 목을 잘라 버렸으니 이어질 때까지 달팽이처럼 오직 전방을 집중하며 꾸준한 균형감각으로 전진하는 수밖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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