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우리는 특검의 정당성을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입력 2017-01-16 17:43  

특검이 결국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부회장이 자신의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하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관련 청탁을 하고 최순실 측에 뇌물을 건넸다고 판단했다는 게 특검의 설명이다. 뇌물액수는 430억원이고, 이밖에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고 한다.

특검의 설명을 아무리 들어봐도 새로 밝혀진 사안이 없다. ‘뇌물’ 또는 ‘제3자 뇌물’이라는 것이 미르 및 K스포츠재단 출연금, 승마협회를 통한 정유라 지원, 장시호의 동계스포츠인재재단 지원 등인데 이미 검찰 수사와 삼성 측 설명을 통해 다 밝혀진 내용이다. 횡령과 위증은 특검이 삼성의 해명을 인정하지 않으면 당연히 따라붙는 죄목이다. 이 부회장 구속결정은 결국 ‘정치적 해석’의 문제가 되고 말았다.

박 대통령이나 최순실의 유죄를 입증하려면 뇌물을 준 쪽을 찾아내야 하고 그래서 특검이 기업 수사에 집중하게 된 사정은 이해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시나리오를 만들어 기업을 옭아 넣는다면 특검의 정치적 편향이 드러나도 너무 드러난 것이다. 이규철 특검보는 어제 브리핑에서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일이 더욱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구속영장을 청구키로 했다”고 말했다. 이런 구차한 설명이야말로 다분히 여론을 의식한 정치적 고려가 있었다는 것을 자인한 것에 불과하다.

이는 특검이 지닌 원초적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이번 특검은 지난해 11월 국회를 통과한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구성됐다. 이 법은 최순실 게이트가 확산되면서 야당이 주도적으로 밀어붙여 국회를 통과했다. 특검법은 야당이 특검을 추천하도록 하는 등(제3조2항과 3항) 정상적인 법률이라고 보기에는 현저히 균형을 상실한 위헌적 법률이다. 특검 자체가 야당의 정치 이벤트로 기획됐다는 것이다. 특검법에는 또 ‘수사대상’으로 야당이 지목한 14가지 사건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그러니 특검은 의혹규명이 아니라 의혹을 유죄로 만드는 수사를 하도록 돼 있다. 특검의 존재이유가 유죄라면 논리는 간단하다. 나치 괴벨스의 말대로 “한 문장만 다오, 누구라도 범죄자로 만들어 주겠다”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특검의 정당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식 특검을 모방해 1999년 ‘조폐공사 파업유도 및 옷 로비 사건 ’으로 도입된 이후 11차례 특검이 있었다. 2014년엔 상설특검법까지 통과시켰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에선 1999년 특검제가 폐지됐다. 공은 이제 법원으로 넘어갔다. 특검에 의해 파괴된 법치와 사법정의를 법원이 살려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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