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복지국가도 자살률 높아
언론의 부풀리기와 악마의 편집이 만든
가짜 통계도 넘쳐"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헬조선론은 강단좌익과 설익은 언론에 의해 확대재생산된다. 집단우울증이랄 수도 있다. 가난을 주제로 글을 쓴 어느 부잣집 자식이 제목을 ‘진짜 가난한 우리 집’으로 했다지 않나. “우리 집은 정말 가난하다. 가정부도 가난하고, 운전수도 가난하고, 정원사도 가난하다”고 썼다는 이야기 말이다. 헬조선을 떠드는 강단좌파들과 그 증거를 찾아 헤매는 기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지옥의 증거를 찾아 나서지만 실패하면 기어이 만들어 낸다.
자살률 1위라는 가장 손쉽게 인용되는 통계부터가 그렇다. 한국의 자살률은 10만명당 28.5명으로 OECD에서 가장 높다.(2013년 기준) 한 해에 1만5000명이 목숨을 끊는다. 32명까지 늘어났다가 조금씩 줄어드는 중이다. 한국 다음으로는 헝가리가 20명으로 2위이고 일본 슬로베니아 벨기에 에스토니아 핀란드, 그리고 놀랍게도 프랑스가 간발의 차이로 상위권 명단을 이어간다. OECD 평균은 12명이다. 조금씩 줄어드는 중이다.
그러나 자살률이 높다는 것을 헬조선의 증거로 삼을 수는 없다. OECD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낮은 나라는 터키다. 10만명당 3명으로 한국의 거의 10분의 1이다. 다음이 그리스 멕시코 이탈리아다. 그 다음은 이스라엘 스페인 영국 포르투갈의 순으로 올라간다. 안락사의 나라 네덜란드와 독일이 11명대로 낮지만, 복지천국 스웨덴도 OECD 평균보다 자살률이 높다. 미국과 거의 비슷하다. 자살을 ‘사회적 자살’로 보았던 뒤르켐이 첫 사회조사를 통해 밝혀냈던 일련의 규칙은 지금도 적용된다. 경제가 엉망인 남유럽 가톨릭 국가들에서 관찰되는 낮은 자살률은 지금도 시류에 관계없이 거의 일정하다. 유럽에서는 북쪽 개신교 국가로 올라갈수록 자살률도 올라간다. 경제적 이유의 자살 즉 ‘신자유주의 자살’은 허구의 이론이다. 인간이 만든 가장 완벽한 도시라는 호주 캔버라가 최고의 자살 도시였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치열한 경쟁도 긴장도 스트레스도 없기 때문에 권태와 함께 깊은 우울증이 찾아온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
우리나라 자살은 IMF 직후 극심한 실업 등 경제충격이 몰아닥쳤던 1999년과 2000년 두 해 동안은 오히려 내려갔다. 김대중 정권 후기와 노무현 정권에서는 치솟는 자살률이 통제되지 않았다. OECD 1위 국가가 된 것은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2003년이었다. 이런 추세는 2011년 31.7명을 정점으로 떨어지기 시작해 이명박 정부 후반 들어 꺾이기 시작했고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26.5명(2015년)까지 서서히 내려섰다.
높은 자살률은 단순히 우울증 치료를 받지 않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우울증 치료를 OECD에서도 가장 안 받는 나라다. 1000명당 20명으로 칠레에 이어 2위다. 에스토니아 헝가리 등 자살률이 높은 대부분 나라도 우울증 치료비율이 낮다. 물론 터키 이탈리아 그리스 등은 자살도 안 하고 우울증 치료도 안 받는다. 어떤 통계로도 신자유주의가 자살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때문에 지옥문이 열렸다는 주장을 만들어 내기 위해 강단좌익들은 아무 숫자나 증거라고 들이댄다.
요즘 신문보도는 경제 통계조차 그 진위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중산층 통계도 그런 사례였다. ‘나는 하류층’이라는 사람이 37.9%에서 44.6%로 급증한 것처럼 보도된 대부분 기사들은 비교시점을 1994년으로 끌어올리면서 ‘대한민국=지옥’을 입증하기 위해 편집된 것들이다. 지난 1월9일 KBS 토론에서 노회찬 의원은 이 신문보도를 들고나와 한국은 지옥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증명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비교시점을 10년 전인 2006년으로 놓고 보면 “나는 하류층”은 45.2%에서 44.6%로 오히려 줄었고 “나는 중산층”은 54.9%에서 55.4%로 되레 늘어났다. 문제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의 빈부격차 확대와 지니계수 상승이었던 것이다. 어떤 이야기든 아무렇게나 써도 좋은 것처럼 생각하는 악마의 편집 현상이 경제기사에까지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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