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단] 왜 트럼프는 성공했고 파월은 실패했을까

입력 2017-01-18 17:47   수정 2017-01-19 10:08

"70년대 초 트럼프 닮은 영국 정치인
노동자층 지지에도 정치적 실패
미국 정치체제에 결함 있는 것인가"

배리 아이켄그린 < 미국 UC버클리 교수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정치적 성공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를 휴이 롱이나 조지 월러스 같은 과거 (미국의)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에 빗대 설명하려는 시도가 많았다. 그러나 가장 그를 잘 설명해줄 수 있는 비교 대상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 영국의 반(反) 이민 선동가 이녹 파월(1912~1998)이다.

둘을 비교하는 게 얼핏 맞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파월은 중하층 가정에서 태어나 전통적인 학식을 갖춘 학자이며 자기 원칙이 분명한 인물이다. 또 정치적으로 인사이더였다. 1950년부터 하원 의원으로 활동했고 1955년에는 앤서니 이든 총리 정부에서 주택부 차관으로 일했다.

그러나, 그와 트럼프 간의 유사성은 부인하기 어렵다. 악명 높은 1968년 ‘피의 강’ 연설에서 유려한 연설가인 그는 정치권의 주류와 명확히 다른 면모를 보였다. 그는 이민을 매도하고 주택·고용·임차관계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인종관계법(1968)을 폄하했다. 그는 로마시대 작가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아스 한 대목을 인용해 “로마인처럼, 나는 ‘티베르 강이 많은 피로 거품을 일으키는 것을 볼 모양’”이라며 넌지시 미국 도심에서 일어난 폭동을 언급했다.

트럼프가 멕시코인들을 무서운 귀신 취급하듯 파월은 인도·파키스탄계 이민자들이 영국의 삶의 방식을 바꾸고 있다고 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은 이민자 수가 정부의 공식 통계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파월은 이민자들을 대규모로 본국에 송환하자는 주장을 지지했다.

‘피의 강’ 연설은 사악하다는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파월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겪고 있는 노동자 계층 유권자들의 열정적인 지지를 얻어냈다. 이들은 아시아계·중미계 사람들이 자꾸 이웃으로 밀려들어오는 ‘침략’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고, 경제적 문제와 이민자 증가를 뭉뚱그려 보는 경향이 있었다.

두 사람의 닮은 점은 이민자에 대한 적의 뿐만이 아니다. 파월은 열렬한 친(親) 기업론자였다. 열성적인 민족주의자로서 영국이 정책을 독립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게 만드는 모든 외국과의 동맹관계를 거부했다. 그는 영국의 정체성과 주권을 두고 타협해야 한다는 이유로 유럽연합(EU·당시는 유럽경제공동체) 참여에 완강히 반대했다. 1974년 그가 영국 보수당을 떠난 것도 이로 인한 견해 차 때문이었다.

신기하게도, 파월은 트럼프처럼 친 러시아 성향이었다. 그의 자유시장 원칙과 양립하지 않았지만 그는 소비에트연방을 높이 평가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의 희생, 자부심 강한 민족주의, 자기 이해관계에 매몰된 다른 나라(미국을 지칭)와 힘의 균형을 이룬다는 점 등이 이유였다.

‘피의 강’ 발언으로 전국적 인물로 부상한 그의 영향력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그는 탈당했다. 이는 그를 정치적 외톨이로 만들었다. 파월은 1987년까지 하원에 남아 있었지만 정치적 영향력은 빠르게 쪼그라들었다.

왜 파월은 트럼프처럼 더 높은 수준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을까? 그리고 그의 실패가 트럼프 현상에 대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첫째, 파월은 대중의 의견을 동원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는 주로 연설을 통해 주목을 받았고 추종자들에게 연설문을 돌려보도록 독려했다. 2개의 타블로이드지를 제외하면 그의 ‘피의 강’ 연설에 관한 보도는 회의적이거나 완전히 적대적이었다. 그리고 언론은 그들 뿐이었다. 1960~1970년대는 BBC가 방송을 지배하던 시기임을 떠올려 보라. 파월에겐 자기 말을 확산시킬 트위터나 이념의 확성기 노릇을 해 줄 폭스뉴스·브레이트바트가 없었다.

둘째, 기성 정치인인 파월은 근본적으로 영국 의회 시스템을 신뢰했다. 그는 추종자들의 반 이민주의와 경제적 불안정성을 근간으로 반 시스템 운동을 구축할 경우, 영국의 의회 민주주의의 기초가 흔들릴 수 있다고 생각해 망설였다. 파 셋째, 파월의 전성기에 영국 대중의 정치에 대한 불만은 트럼프 시대 미국 대중이 갖는 불만에 비해 한계가 있었다. 경제적으로는 형편 없었던 1970년대에도 영국 유권자들은 정치적 ‘현상유지’를 거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정치 시스템이 파월 같은 이단아를 배제하는 쪽으로 작동했다. 영국에서는 일반 유권자가 아니라 하원이 총리를 뽑는다. 완전히 시스템이 다 파괴되는 위기가 오지 않는 한 대중의 의견이 지도자 선출에 미치는 영향은 한정돼 있다. 이런 구조가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에게 높은 장벽으로 작용했다.

그렇다면 파월-트럼프 비교의 최종적인 교훈은 미국 같은 대통령제 정부가 정치적 극단주의자들을 가려내는 데 덜 뛰어나다는 것일 지도 모른다. 반면 그 반대가 참일 지도 모르고.

배리 아이켄그린 < 미국 UC버클리 교수 >

ⓒProject Syndicate

정리=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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