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태 IT과학부 기자)북한 핵과 미사일 개발로 대북제재조치가 내려진 상황에서 북한 과학자들의 해외 활동은 위축된 것으로 추정돼 왔다. 하지만 최근 10년새 북한 과학자들이 서구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수는 도리어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해외 논문을 발표하는 과학자 가운데 상당수는 독일 등 유럽에 머물며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현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책임연구원은 18일 국가과학기술연구회와 통일과학기술연구협의회가 공동 개최한 제4회 통일과학기술연구포럼에서 북한 과학자의 해외 학술 활동을 분석한 결과를 처음 공개했다. 해외에 논문을 많이낸 북한 과학자 명단과 주변 관계를 북한 매체의 보도가 아닌 데이터 분석으로 규명한 결과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 책임연구원은 전세계 학술논문을 검색할 수 있는 웹오브사이언스를 활용해 북한 학자의 논문을 찾아내고 소속과 해외 공동연구자, 논문의 기여도 등을 분석했다. 북한 학자들이 2005~2015년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 등재 학술지에 낸 논문은 모두 260건으로 한국과 비교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북한 학자 해외 논문 발표 건수는 2005년 11건에서 2010년 28건, 2015년 65건으로 꾸준히 늘고 었다.
북한의 1차와 3차 핵실험이 벌어진 2006년과 2013년은 전년보다 줄었지만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로 나타났다. 최 책임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계속되며 제재가 한층 강화된 상황에서도 80건 이상의 논문이 해외 학술지에 발표됐다. 최근 들어서는 해외 연구진과 공동 연구가 아닌 독자 연구를 통해 해외 학술지에 내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북한은 생명과학과 공학 분야 학술 논문이 많은 한국과 달리 물리학과 수학, 화학 논문을 해외 학술지에 많이 실었다. 10년간 발표된 논문 총 260편 가운데 물리 논문은 60편(23.1%)로 가장 많았고, 수학이 40편(15.4%), 화학 40편(15.4%) 공학 18편(6.9%)순이었다.
해외 학술지에 가장 많이 연구 논문을 발표한 북한 과학자와 이들과 함께 연구하는 해외 연구진도 처음 공개됐다. 김천웅 김책공업종합대학 교수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화학 분야 논문 12편을 국제학술지에 실어 가장 많은 학술 논문을 서방세계에 소개한 것으로 분석됐다. 김 교수는 주로 중국 연구진과 공동 연구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광현 국가과학원 연구원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11편의 물리 분야 연구 논문을 독일 연구진과 함께 내 그 뒤를 이었다. 한성철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는 2005년부터 2015년까지 10편의 수학 논문을 해외 학술지에 냈다. 북한 수학계를 이끄는 한 교수는 ‘한송철’이라는 이름으로 2009년 5월 대한수학회보에 중국 연구자와 논문을 낸 일이 있는 비교적 알려진 인물이다.
해외에 학술 논문을 낸 북한 과학자들은 독일과 중국 유학 중 인연을 맺은 현지의 과학자와 공동 연구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260편 중 169편에 제1저자로 등재돼 사실상 연구를 주도하고 논문의 질도 상당 수준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한국 과학자들처럼 동시에 다양한 나라 연구진과 협력하는 과학자까지 등장했다. 강진우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는 10편에 이르는 물리 논문을 쓰기 위해 중국과 독일 등 여러나라 학자들과 동시에 연구를 수행하는 등 해외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고 있었다. 강 교수는 유네스코 산하 세계과학원 회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북한 과학자와 가장 많이 연구하는 나라는 중국, 독일, 호주, 미국 순으로 나타났으며 한국과 일본 과학자들과도 논문을 썼다. 북한과 함께 가장 많이 공동 논문을 발표한 곳은 중국 지린대와 우한대, 저장대 순이었다. 서방 연구기관 가운데는 베를린공대, 막스플랑크연구소 등이 활발한 교류를 펼쳤다. 대북제재조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과학자들의 국제 교류는 미미하지만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번 분석에서는 북한의 순수 과학 연구는 김일성종합대학이, 공학 연구는 국가과학원과 김책공업종합대학이 주도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한국의 서울대와 같은 김일성종합대학은 전체 260편 논문중 절반에 가까운 116편의 기초과학 논문을 해외에 발표했다. 이는 국가과학원과 김책공대가 낸 논문을 합한 76편을 훨씬 웃돈다.
북한도 유럽과 미국, 아시아에 해외 특허도 내고 있다. 국가과학원 소속 석영범 연구원은 22건, 김명철 연구원은 21건, 김성철 연구원은 19건의 특허를 해외에서 획득했다.
북한은 지난해 제7차 당대회 이후 강성국가 건설을 위한 경제강국 실현 방안으로 과학기술을 강화하고 있다. 바이오, 나노, 정보기술 등 미래 첨단 기술뿐 아니라 기초과학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최 책임연구원은 “해외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고 해외 연구진과 공동 연구를 통해 검증된 북한 과학자들은 통일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인재에 해당한다”고 말했다.(끝)/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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