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탭스콧·알렉스 탭스콧 지음 / 박지훈 옮김 / 을유문화사 / 588쪽│2만5000원
온라인 신뢰성 높이는 블록체인
가상 결제 때 해킹 원천봉쇄
투명성·안전성 획기적으로 높여
제3자 없는 개인간 거래 활성화
전자정부 구현에도 활용될 것
[ 송태형 기자 ] 미국 유명 만화가이자 소설가인 피터 스타이너가 1993년 미국 주간지 뉴요커에 게재한 만화에는 개 한 마리가 다른 개에게 말을 거는 장면이 나온다. “인터넷에서는 그 누구도 당신이 개인지, 사람인지 알지 못하죠.”
인터넷은 접속하는 사람들에게 ‘정보의 바다’에서 뛰놀 수 있게 하고, 표현의 자유를 분출할 수 있게 하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지만 비즈니스와 경제 활동에는 심각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상대방이 사람인지 개인지 로봇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은행이나 정부 등 믿을 만한 제3자가 확인해 주지 않는 이상 서로를 믿고 돈 거래를 할 수 없다. 인터넷에서 사용자들이 직접 연결해 데이터를 주고받는 개인 간(P2P) 네트워크 서비스의 가장 중요한 문제도 서로를 신뢰할 수 없다는 점이다. 1990년대를 풍미한 냅스터나 소리바다, 지금도 널리 쓰이는 토렌트를 써봤다면 가짜 파일을 내려받은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무어의 위법(Moore’s outlaws)’이란 말이 있다. 반도체 처리 능력이 매년 두 배씩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이 불법 파일 유포자나 다운로더, 피싱 사기꾼, ID 도둑, 해커 등 사이버 절도범과 사기꾼의 능력도 두 배씩 늘려 놓는다는 의미다.
이런 인터넷의 난제들을 해결해 온라인 거래의 신뢰성과 안전성, 투명성을 높여줄 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블록체인(blockchain)이다. 세계경제포럼은 지난해 8월 발표한 ‘2016 10대 미래기술’ 보고서에서 세계 은행의 80%가 올해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고, 2025년 이 기술에 기반한 매출이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0%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돈 탭스콧은 《블록체인 혁명》에서 “블록체인은 1세대 디지털 혁명으로 이룬 ‘정보의 바다’를 ‘가치의 바다’로 만드는 2세대 혁명적 기술”이라며 “블록체인 기술이 가져올 변화는 기존의 패러다임과 질서 자체를 바꾸는 제2의 산업혁명에 비견할 만하다”고 말한다. 탭스콧은 아들 알렉스 탭스콧과 함께 쓴 이 책에서 블록체인의 의미와 본질을 설명하고, 이 기술로 변화할 미래 세상을 경제·정치·사회적 관점에서 그려낸다.
‘공공 거래 장부’로 불리는 블록체인은 가상화폐로 거래할 때 발생할 수 있는 해킹을 막는 기술이다. 기존 금융회사는 중앙집중형 서버에 거래 기록을 보관하는 데 비해 블록체인은 거래에 참여하는 모든 사용자에게 거래 내역을 보내주며 거래 때마다 이를 대조해 데이터 위조를 막는다. 거래내역을 블록(block) 형태로 사슬(chain)처럼 연결한 구조여서 블록체인이란 이름이 붙었다. 2009년부터 거래된 디지털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에 적용된 P2P 네트워크 기반의 암호화 프로토콜로 세상에 등장했다.
저자에 따르면 블록체인은 변경할 수 없는 ‘공개 원장’에 가치를 기록해 익명성과 보안성이 보장된 거래를 구현한다. 이 기술의 강력함은 비트코인의 작동 원리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비트코인에 사용되는 블록체인은 ‘분산’돼 세계에 퍼져 있는 PC에서 작동한다. 데이터에 저장되지 않은 암호화된 메시지를 통해 네트워크에서 개인 대 개인으로 소통·거래하기 때문에 해킹에 노출되는 별도의 데이터베이스가 존재하지 않는다. 서버 해킹을 통한 개인 정보 유출이 근본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구조다.
블록체인 기술은 전자화폐의 기능을 뛰어넘는다. 강력한 암호로 보호된 ‘디지털 원장’에 출생·사망 증명서부터 등기부등본, 금융계좌, 보험 청구, 투표, 원산지표시 등 코드화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있다. ‘월드와이드 웹’을 닮은 ‘월드와이드 원장’으로 불리는 이유다.
블록체인으로 인터넷에서 개인이 서로 믿고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이 확립되면 제3자가 개입해 중개수수료를 챙기는 비즈니스가 사라지고 진정한 ‘P2P 경제’가 출현할 가능성이 있다. 금융분야에선 기존 금융사를 거치지 않고 개인 간 대출, 투자, 송금 거래를 제공하는 P2P 서비스가 급격히 발전하고, 음악분야에선 음악인과 소비자가 직접 만나 수수료 없이 파일을 주고받는 블록체인 플랫폼이 활성화될 것이다.
저자는 “중앙집중적인 에어비앤비나 우버가 아니라 분산화된 ‘블록체인 에어비앤비 우버’를 상상해 보라”며 “블록체인은 택시기사의 직업을 뺏기는커녕 우버의 일을 빼앗아 기사들이 고객을 직접 상대하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말한다.
블록체인의 익명성과 투명성은 정치 후원금 모집, 온라인 투표 등 전자정부 구현에도 유용하다. 그는 “블록체인은 경제뿐 아니라 정치·사회적으로도 큰 변화를 이끌어낼 원천기술”이라며 “지금보다 좀 더 직접적이고 참여적이며 투명한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