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특검의 구속영장이 어제 기각됐다. 기업들로선 한숨을 돌린 셈이지만 ‘여론 수사’의 두려움까지 완전히 떨친 건 아니다. ‘재벌 구속’을 외치던 광장은 오히려 더 달아오를 것이고 기회주의 정치인들의 말은 더욱 거칠어질 것이다. 이런 증오를 받으며 기업을 계속하겠다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새 정부가 들어서면 또 기업 총수들을 부를 것이다. 대통령 해외순방 때마다 경제사절단으로 참가해달라고 청와대에선 또 전화가 올 것이다. “주면 줬다고, 안 주면 안 줬다고 패는데”(김영배 경총 부회장) 앞으로 대통령을 독대하려는 총수가 몇이나 될까.
소설 '아틀라스'와 꼭닮은 한국
대기업 대부분이 모든 행사엔 앞으로 전문경영인이 나가기로 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외국 기업에 그룹 전체를 팔아버리는 일이 곧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점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기업가들의 ‘파업’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기업인뿐만 아니다. 대학총장도 보직교수도 병원장도 마찬가지다. 괜히 세상에 나서서 험한 꼴을 보느니 차라리 조용히 살겠다는 다짐을 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사라지면서 나라 경제가 파탄에 빠지는 디스토피아를 절묘하게 그린 소설이 있다. 러시아 출신의 미국 작가 아인 랜드(1905~1982)가 1957년에 쓴 《아틀라스》다. 생산 없는 분배와 평등주의가 만연한 어느 미래의 미국이 배경이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가들이 장악한 정부는 만성적인 불황 앞에 속수무책이다. 기업가와 기술자, 학자, 예술가, 의사들이 정부의 포퓰리즘에 반발해 줄줄이 파업을 선언하고 어딘가로 숨어버린다. 그 와중에도 정부와 노조는 ‘기회균등법’ ‘과열경쟁방지법’ 등 규제를 늘려간다. 전체주의적 정부를 피해 도망한 사람들이 숨어 사는 마을이 바로 아틀라스다. 바깥세상이 스스로의 모순으로 무너질 때, 이들은 약탈자들의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세상으로 돌아온다.
反기업, 평등주의는 파탄의 길
《아틀라스》는 미국인들에게 성경 다음으로 큰 영향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 소설이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은 박사과정에 다닐 때 랜드와 교류하며 그를 좋아했던 팬이다. 폴 라이언 미국 하원의장은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책으로 《아틀라스》를 꼽았고 보수정치운동인 ‘티파티’는 이 소설의 애독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미국인들의 머리와 가슴 속에 《아틀라스》가 주는 메시지가 선명하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 소유권 그리고 책임이다. ‘돈이란 인간이 자신의 정신과 노력의 주인이라는 규범에 근거한 것’이고 “정직한 자는 자신이 생산한 것 이상으로 소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고 규정한다. 랜드는 “가장 좋은 사회는 자신이 만든 가장 좋은 것을 다른 사람이 만든 가장 좋은 것과 거래하는 사회”라고 말한다. ‘부를 창출하는 사람을 존중하는’ 사회인 것이다.
다른 이들이 가진 것에 대한 반감, 그것을 부추기는 정치인과 자극하는 언론, 그리고 그런 증오의 반감을 여론으로 알고 칼을 휘두르는 검찰…. 《아틀라스》가 예견한 디스토피아가 2017년 한국에 펼쳐지고 있다. 세계를 놀라게 했던 ‘한국의 경영’도 추락하고 있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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