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1500억달러 보조금 동원해 반도체 국산화
로스 상무장관 내정자 "미국 경제·안보 훼손"
중국산 반도체에 보복관세 땐 한국도 타격
[ 뉴욕=이심기 기자 ]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새로운 타깃으로 삼았다. 반도체를 국가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중국의 전략이 미국 경제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양국 간 통상전쟁의 전선이 위안화 환율조작 시비를 넘어 반도체 분야로 확대될 전망이다.
◆1500억달러 보조금 논란 확산
윌버 로스 미국 상무부 장관 내정자는 19일(현지시간) 열린 의회 인준 청문회에서 “중국의 반도체산업 육성정책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버락 오바마 정부 당국자들과 이 문제를 협의했으며, 중국의 전략이 미국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브루스 앤드루스 미 상무부 부장관도 “중국의 반도체 투자가 철강과 태양광산업에서 미국에 입힌 타격을 연상시킬 정도로 공격적”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반도체 소비국이면서 이를 대부분 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자체 생산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하면서 1500억달러에 달하는 기금을 마련해 무차별적인 기업 인수와 관련 기술 및 우수인력 확보에 나섰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정부가 석유보다 더 많은 돈을 반도체 수입에 쓰고 있을 정도로 해외 의존도가 높다는 사실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반도체 회사인 SMIC 자료를 보면 2000년 160억달러에 불과했던 중국의 반도체시장은 지난해 1430억달러로 불어났다. 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도 중국이 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3분의 1을 소화하고 있지만 자체 생산량은 금액 기준으로 6~7%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중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이 반도체시장을 왜곡하고, 미국의 기술우위 산업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물론 안보 분야의 국익까지 훼손한다고 보고 있다. 오바마 정부와 트럼프 정부는 이런 인식을 같이한다.
백악관 직속 과학기술자문위원회(PCAST)는 이달 초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제출한 보고서에서 “중국의 반도체산업 정책이 미국 국익에 실질적인 위협이 된다”고 경고했다. 또 “최첨단 반도체 기술은 국방시스템과 군사력을 유지하고 사이버 보안에 대한 위험을 완화하는 데 필수적”이라며 “미국이 장기적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으로 불똥 튀나
미국은 첨단 반도체 기술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대(對)중국 투자 관련 조사를 통해 유럽연합(EU) 등과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나서 지난해 말 독일 반도체 장비회사 아익스트론이 중국 투자회사에 매각되는 것을 저지한 것도 이 같은 방침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조치다. 앤드루스 부장관은 “이는 보호주의가 아니라 공정경쟁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미국에 의해 해외기업 인수가 차단되면서 고급인력 스카우트와 대대적인 연구개발 및 설비투자를 통해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대표 반도체 기업인 칭화유니그룹이 이날 난징에 300억달러를 투자해 메모리칩 공장을 짓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칭화유니그룹은 2015년 미국의 마이크론을 사려 했지만 미국 정부의 반대로 실패했다.
양국 간 반도체 전쟁은 중국이 세계 최대 시장을 지렛대로 활용하면서 더욱 격화할 전망이다. FT는 중국 정부가 반도체 판매 조건으로 외국기업에 기술 이전을 강요하거나 중국 내 생산제품을 우선 구매하도록 수입제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이 태양광 패널사업처럼 공급과잉으로 가격을 붕괴시킨 뒤 경쟁사를 고사시키는 전략을 사용할 가능성도 제기했다.
트럼프 정부는 이에 대해 중국산 제품에 최대 45%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견제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럴 경우 중국에 공장을 설립했거나 합작투자를 한 퀄컴이나 인텔 등 미국 기업은 물론 삼성전자까지도 타격을 받을 공산이 크다.
전문가들은 최첨단 공정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중국과 반도체산업 우위를 유지하려는 미국 간 반도체 전쟁이 보호무역정책과 맞물리면서 예측불허의 국면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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