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20% 적게 할당…배출권 상시부족 시달려
남는 기업들 대부분도 불확실성 대비 쌓아두기
정부, 불확실성 줄여줘야
'예비 배출권' 조기에 풀고 이월 한도 등 방안 마련 시급
[ 황정수/심은지/이태훈 기자 ] 탄소배출권을 사고파는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왜곡되면서 배출권을 확보해야 하는 전력, 반도체, 비철금속 분야 등의 기업들이 ‘초비상’이다.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이 배출권 할당량(배출 한도)보다 많은 기업은 다음해 6월 말까지 차이(배출량-배출 한도)만큼 배출권을 구매해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지난 20일 기준 배출권 가격(2만850원)은 작년 평균 가격(약 1만4000원)보다 40% 상승했다.
배출권이 부족한 기업들은 비싼 가격에라도 사야 한다. 정부가 제시한 할당량을 맞추지 못하면 시장가격의 세 배 정도 과징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출권 물량 품귀 현상 때문에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다. 전문가들은 “당초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과도하게 잡고 기업들에 할당량을 무리하게 조이면서 시장의 왜곡이 벌어지고 있다”며 “정책실패의 예고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배출권 수급 불균형
배출권 가격 급등의 1차적 원인은 ‘수급 불균형’이다. 정부의 배출권 과소할당 때문에 ‘배출권 상시부족 기업’이 많다. 특히 전력, 반도체, 비철금속 업체들은 공장 가동이 조금만 늘어나도 온실가스 배출량이 할당량을 쉽게 초과한다. 반면 배출권이 남는 기업 중 대다수는 이듬해 배출 한도가 줄어들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쌓아두고 있다.
산업계에선 배출권 가격 급등의 근본 원인으로 정부의 ‘무리한 배출권 감축 계획’을 꼽는다. 일부 기업에 달성 불가능한 배출 한도를 줘 ‘상시적인 배출권 부족 현상’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예컨대 삼성전자는 2015년 기준 배출 한도보다 실제 배출량이 많아 70억원 규모의 배출권을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 불확실성도 한몫
정부가 2014년 제1차 계획기간(2015~2017년)의 업종별 배출 한도를 ‘직전 3년 평균 배출량’ 기준으로 정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예컨대 2012~2014년 업황이 부진해 배출 한도를 적게 받았다가 2015~2017년 업황이 갑자기 개선된 업종은 배출권 부족 현상을 겪게 된다.
정책 불확실성도 가격 급등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고 있다. 정부는 오는 6월 말까지 제2차 계획기간(2018~2020년)의 기업별 배출권 할당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가 기업별 배출권 할당량을 어느 정도 조일지, 배출권을 할당하는 기준을 어떻게 바꿀지 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 때문에 배출권이 남는 기업 대다수는 배출권을 쌓아두고 있다.
◆“시장 안정화 조치 필요”
전문가들은 적극적인 시장 안정화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예비 배출권’을 작년보다 빨리 시장에 풀고 배출권 이월 한도를 두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너지업계의 한 관계자는 “예비 배출권을 정부가 조속히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고민 중이다. 우선 이르면 이달 중 2015년 이전의 온실가스 감축분에 대해서도 배출권을 인정하고, 온실가스 감축계획 변경(2020년 30%→2030년 37%)에 따른 ‘재할당’을 하면 수급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했다.
■ 탄소배출권 거래제도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배출할 권리를 사고팔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국가가 기업별로 탄소배출량을 미리 나눠준 뒤 할당량보다 배출량이 많으면 탄소배출권 거래소에서 배출권을 사야 한다. 반대로 남은 배출권을 거래소에서 팔 수도 있다.
황정수/심은지/이태훈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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