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상위 30% 학과 비중, 6년새 21%→15.1%로 감소
입시제도도 경쟁 추락 원인
서울 주요대 수시전형서 성적 상위권 학생 선점
권역별 통합 '연합대학' 모델, 중소형대학 반발로 쉽지 않아
대선 예비 주자들의 설익은 개혁안도 혼란 초래
[ 박동휘 / 황정환 / 임락근 기자 ] 일본 아이치현에 있는 나고야대는 노벨상 수상자를 세 명이나 배출한 지방의 유서 깊은 국립대다. 효고현의 고베대는 상과대로 유명하다. 공인회계사 배출 기준으로 전국 1위다. 일본 지방 국립대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입시 경쟁률도 치열해 TV 드라마에서 “공부 못해 사립대 갔다”는 대사가 나올 정도다.
국내 지방 국립대의 위상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전국 상위 30% 학과 중 국립대(9개 지방 거점대학)에 속한 학과는 2009학년도 21%(인문계 기준)에서 2017학년도 15.1%로 낮아졌다. 경쟁력 개선을 위한 개혁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통폐합을 우려한 중소 국공립대의 반발 탓이다. 대선 정국까지 맞물려 중구난방식 개혁안이 쏟아지고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지방 국립대의 추락
전국의 국공립대는 50개(대학알리미 공시 대상)다. 전국 대학(407개)의 12% 수준이다. 미국, 유럽은 물론이고 일본에 비해서도 국공립대 비중이 낮은 편이다. 일본만 해도 전체 대학 781개 중 178개(23%)가 국공립이다.
숫자가 적은 만큼 ‘정예’로 길러져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서울대를 제외한 전국 49개 국공립대의 위상은 학부모들 사이에서 입버릇처럼 회자되는 ‘인(in) 서울’이란 말 속에 응축돼 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음을 뜻하는 말이다. 한때 지방 명문으로 거론되던 주요 국립대조차 ‘지방 잡(雜)대’로 전락했다.
대형 교육업체 관계자는 “대입 전형에서 수시가 일반화하면서 서울 주요 대학들이 성적 상위권 학생을 선점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며 지방 국공립대 경쟁력 약화 원인으로 입시 제도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이준호 서울대 학생처장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지방 거점 국립대가 서울의 웬만한 대학보다 인기가 있었다”며 “부와 권력이 서울로 집중되면서 입학 재원의 분배가 왜곡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국공립대는 교육 기회의 평등이라는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값싼 등록금에 교직원의 질도 높기 때문이다. 사립대 의대 1년 학비가 360만엔(게이오대)인 일본에서 국공립대는 의대도 다른 전공과 동일하게 54만엔(교토대)을 받는다. 전문가들은 지방 국공립대의 부활이 지역 균형 발전과도 연계돼 있는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재원 고민 없이 개혁안만 봇물
국공립대 개혁과 관련해서는 ‘연합대학’ 모델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강원대 충북대 충남대 전남대 전북대 경북대 부산대 제주대 경상대 등 9개 지방 거점 국립대를 중심으로 광역별로 국공립대 간 기능과 역할을 재편하자는 게 골자다. 장기적으로는 2~3개 학교 간 통합도 가능하다.
교육부는 합리적인 모델을 제시하는 연합대학에 수백억원을 지원해주겠다며 ‘군불’을 때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정부에서 하라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니고, 대학 스스로 밑그림을 그리는 등 자율이 원칙”이라며 “국공립대끼리 각자의 장점을 합쳐 서울 주요 대학을 앞지를 만한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자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전북대와 전주교대, 강릉원주대와 강원대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부산에서도 부산대를 중심으로 부경대, 부산교대, 한국해양대 등이 연합 전선을 구축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장애물이 만만치 않다. 중소 국공립대의 반발이 거세다. 전국국공립대 노조는 지난 22일 성명을 내고 “국립대 통폐합 정책인 국립대 연합대학 추진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주요 대선 예비후보들이 설익은 국공립대 개혁안을 내놓고 있는 것도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서울대와 지방국립대를 묶어 함께 입학하고, 같은 학위를 받는 ‘공동학위제’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에 대해 국립대 관계자는 “서울대 폐지로 학벌 타파를 외치는 민심을 달랠 수는 있겠지만 교육 경쟁력 측면에선 하향 평준화로 귀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서울 주요 대학 총장도 “지방 국공립대를 서울대급으로 올리려면 그만큼의 투자가 필요한 것 아니냐”며 “재원에 대한 고민도 없이 대선 예비주자들이 초보적인 공약을 내걸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국공립대에 나가는 정부 예산 중 약 17%가 서울대 몫이다.
박동휘/황정환/임락근 기자 donghuip@hankyung.com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