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윤상 기자 ] “법무부 검사는 검사도 아냐!”
A검사는 술기운이 확 깰 정도로 놀랐다. 초임 시절이던 것으로 기억했다. ‘선배 검사가 하는 말을 잘못 들었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선배를 쳐다봤더니 이유를 말해줬다. “수사하는 게 검사야. 그래서 법무부 검사는 사무관이야.” 법무부는 모든 검사가 인사 때 1지망으로 써내는 엘리트코스다. 선배 검사들도 모를 리 없다. A검사는 “출세지향적으로 살지 말고 검사다운 검사가 돼라는 조언으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검사다움’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열정인 동시에 국가 권력이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도구로 전락하기도 하는 ‘양날의 검’이다. 이런 검사 특유의 DNA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초임 검사 훈련은 주로 ‘기살려주기’가 많다. 차장검사 출신인 B변호사 얘기다. 부장검사 시절 초임 검사가 머리를 긁적이며 결재서류를 들고 찾아왔다. 사연을 들어보니 사건관계인에게 말도 안 되는 선처를 약속했다는 것. 그는 “아무리 초임이더라도 검사가 한 말은 지켜야 한다. 앞으로 그러지 마라”고 일러준 뒤 서류에 사인해줬다고 한다.
후배 검사에게 반말을 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검찰 출신인 C변호사는 “수사관이나 일반 직원 앞에서 한참 선배 검사가 ‘김공’ ‘이공’이라고 불러줬던 기억이 있다”고 전했다.
선후배 간 ‘검사다움’의 전수는 업무를 통해서 또는 회식자리에서 주로 이뤄진다. 특수부나 강력부를 선호하는 이유는 카리스마가 있는 선배 검사가 많기 때문이다.
검찰에서는 회식자리가 특히 중요하다. 이곳에서 검사다움을 인정받아야 출세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D부장검사는 2년차 때 차장검사에게 술을 한잔 건네다가 핀잔을 들었다. 지방검찰청의 ‘넘버2’라고 깍듯이 예의를 갖추느라 무릎을 꿇고 다가갔더니 차장검사가 “검사는 함부로 무릎 꿇는 게 아니다”고 점잖게 타일렀다고 한다.
검찰 출신인 E변호사는 “한번 문 사건은 끝까지 파고들고, 선배들한테는 깍듯하면서 동시에 검사다운 이미지를 풍겨야 ‘쟤, 일 좀 한다’는 평가를 듣는다”고 했다. 그는 “특수부 검사들이 직진밖에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그런 성향의 검사들을 주로 뽑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검사 출신 변호사들은 이 ‘검사다움’을 검사가 갖고 있는 장점인 동시에 극복할 과제로 꼽는다. 검찰 출신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검찰이 이미지 쇄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수사를 지휘하는 검사의 ‘DNA’ 자체가 강할 수밖에 없다”며 “포장을 아무리 예쁘게 해도 검사는 검사”라고 말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검찰 조직문화가 조금씩 변하면서 전통적인 ‘검사다움’이 많이 희석되고 있다. 로스쿨 출신 검사와 여검사 비율이 늘면서 내부 구성원 출신이 다양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13년차 F부장검사는 “인사에 큰 욕심 없이 무난하게 검사 생활을 하려는 후배가 많아지다 보니 검찰 조직 분위기 자체가 예전과는 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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