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리는 맬컴 턴불 호주 총리와의 전화회담을 통해 미국이 빠진 TPP라도 조기 발효토록 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일본은 중국이 미국 주도의 TPP에 맞서 추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의를 계속한다는 얘기도 흘리는 중이다. TPP 참가국인 호주와 뉴질랜드 역시 미국이 불참해도 TPP를 추진하겠다며 중국, 인도네시아 등의 동참을 바란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런 분위기를 읽은 중국은 미국의 TPP 탈퇴 선언으로 자국이 주도하는 RCEP가 탄력받기를 은근히 바라는 눈치다.
하지만 미국이 빠진 TPP와 RCEP가 동력을 찾을지는 의문이다. TPP 참가국들이 대안으로 언급하는 RCEP는 중국의 산업구조로 보나 불투명한 법적 시스템으로 보나 TPP 수준의 무역자유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무늬만 자유무역에 그칠 공산이 크다. TPP 참가국들이 RCEP를 언급하는 게 다분히 미국을 향한 외교적 수사로 들리는 이유다.
생각해 볼 것은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무엇을 할 것이냐다. 일각에선 한국도 RCEP에 관심을 둘 때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또 한 번 번지수를 잘못 짚는 선택이 될지 모른다. 일본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TPP 참가국과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한국으로선 오히려 교착상태에 빠진 일본과의 FTA로 눈을 돌려 볼 만하다. TPP가 그대로 추진됐더라도 한국의 TPP 참여는 곧 한·일 FTA 체결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더구나 한·일 FTA가 상품개방 수준에 대한 양국 간 의견차로 중단됐던 때와 지금의 상황은 크게 다르다. 한국은 청년들의 일자리를 늘리고 산업 경쟁력을 높일 기회이고, 일본은 일본대로 TPP 무산을 타개할 새로운 돌파구로 삼을 수 있다. 일본으로서는 우군이 절실한 때다.
한국이 먼저 한·일 FTA 협상 재개를 제안하면 일본이 호응할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한·일 FTA 추진은 양국 간 꼬인 외교적 현안들을 자연스럽게 푸는 카드가 될 수도 있다.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등 거대 경제권과 FTA를 맺은 한국이 가까운 일본과 FTA를 맺지 못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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