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구속영장 기각 그 이후... 리더에게 공짜혜택은 없다

입력 2017-01-24 18:58   수정 2017-01-25 10:04



(김용준 생활경제부 기자) 지난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됐다. 여진은 지금도 논란으로 한국사회에 남아있다. 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봤다. 다만 불구속 자체에 대한 가치판단은 배제했다. 기업들은 이번 건을 보며 무엇을 얻어야 할 것인가가 글을 쓰는 취지이기 때문이다.

◆평판자본

2006년 4월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이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당시 포털 사이트들에서 검찰이 정 회장을 구속수사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네이버, 다음, 엠파스 등 3개 포털에서 모두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불구속 의견이 더 많았다. 국가경제를 우려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그만큼 컸다. 불구속을 지지하는 비중도 60%가 넘었다. 다음 67.1%, 네이버 65.3%, 엠파스 72.7%였다. 하지만 정 회장은 구속됐다.

10년이 지난 2017년 1월에 또다른 사회적 논쟁의 불이 붙었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 건이다. 지금까지 설문조사를 제대로 한 곳은 없다. 모 스포츠지가 직장인과 자영업자·주부 등 10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것이 전부다. 응답자의 87%가 특검이 이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에 대해 “잘한 일”이라고 답했다.

고민은 옮겨갔다. 왜 이런 차이가 났을까. 구속영장을 기각한 판사에 대한 비판적 여론은 무엇을 의미할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 회장과 이 부회장이 갖고 있는 ‘사회적 명성’의 차이가 아닐까하는 데 생각이 다다랐다. 즉 평판자본의 크기가 달랐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자신의 역량을 숫자로 증명했다. 2000년대초만해도 자동차의 본고장 미국 디트로이트에 있는 전문가들은 이런 말을 했다. “현대자동차는 곧 다임러 벤츠에 인수될 것이다.” 현대차는 그저그런 아시아의 한 브랜드였을 뿐이었다. 정 회장은 이런 현대자동차를 세계 5위(생산량, 판매량 기준)의 자동차 업체로 키워냈다. 그 과정에서 그의 경영 스타일에 대해 많은 논란도 있었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가 국가경제에 기여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경제를 걱정해 불구속해야 한다고 응답한 것이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뚜렷한 성과가 없었다. 부모로부터 거대한 기업 삼성을 승계받은 것 외에 그가 사회에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구속, 불구속에 대한 논쟁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평판자본이란 관점에서 보면 더 분명해진다.

존 도얼리의 책 <명성경영전략> 표지에 크게 나와 있다. “R=P+B+C”

Reputaion=Sum of Images=Performance+Behavior+Communication. 평판=이미지의 총합=성과+행위+커뮤니케이션

이 부회장은 지금까지는 성과를 증명하지 못했다. 호감을 줄 만한 행동과 시도도 별로 없어 보인다. 커뮤니케이션이 성공적이었는지는 평가하기 이르다. 구속을 면한 것 자체가 커뮤니케이션에 성공했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데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어떻게 과거와 단절했나

삼성의 역사는 크게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관리의 삼성, 전략의 삼성, 창의의 삼성이다.

관리의 삼성은 삼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때부터 내려온 문화다. 수많은 매뉴얼, 철저한 관리를 통해 성장한 삼성을 말한다. 일본을 벤치마킹했다. 이건희 회장때의 삼성은 전략의 삼성이라고 부른다. 삼성은 빠른 추격자 전략을 통해 미국, 독일, 일본의 기업들과 싸웠다. 수많은 작은 전략도 성공적이었다. 특히 인재정책을 전략의 수준까지 끌어올린 것은 글로벌 플레이어로 올라서는 지렛대가 됐다. 한국 일본 미국의 기업문화를 합친 독특한 형태였다. 그는 아버지의 시대와 단절했다. 7·4제 등 온갖 실험을 통해 회사를 바꿔갔다. (그의 성공과 실패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은 생략한다.)

이건희는 앞으로 삼성은 “창의의 삼성으로 가야한다”고 했다.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지침이었다. 이 숙제를 이재용 부회장이 이어받았다. 그에게도 단절이 필요했다. 과거의 관습, 과거의 성공경험, 과거의 사람 등으로부터의 단절이었다.

시민들뿐 아니라 삼성 직원들도 기대가 많았다. 새로운 시대의 첫물이기를. 하지만 그는 과거와 단절하지 못했다. 과거의 관습, 그것도 오래된 관습을 재연했다. 단순히 권력의 압박에 못이겨 최순실을 지원한 게 문제가 아니다. 이 근본적 문제를 파생시킨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도 마찬가지다. 오죽했으면 본인도 "왜 이 안에 찬성했는지 모르겠다"도 말했겠는가.

한 컨설턴트는 이렇게 진단했다. “법적으로 문제만 없으면 해도 된다는 인식이 삼성을 지배하고 있다.”

법적 문제만 없으면, 법망만 피할 수 있으면 괜찮다는 것은 오래된 패러다임이다. 법적 문제는 많은 문제 가운데 하나일뿐이다.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삼성은 문제를 법의 문제로 봤다.

하지만 법원, 검찰은 과연 법적 논리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까? 다음 당연히 아니다. 한국은 말할 것도 없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변호사가 되면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과정이 하나 있다. 한국에는 없는. PR 과정이다. 그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유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 여론법정을 돌파하지 못하면 실제 법정에서도 불리하다는 것을.

이재용 부회장을 위한 변명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강력히 무언가를 요구하면 어떻게 이를 거부할 수 있겠냐. 말이 쉽지 가능한 일이냐.” 한국사회의 수준이 그렇다면 할 말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마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기업가, 새로운 리더가 되려는 이 부회장이 넘어야 할 숙제다.

이 문제에 대해 피터 드러커는 이런 답을 했다. “경영은 일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고, 리더십은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직원들은 더 중요한 자산

2014년 이후 삼성 직원들은 흔들렸다. 그 계기는 이재용식 경영이었다.

계열사들을 이리저리 합병했다. 회사를 매각하기도 했다. 긍정적 평가도 있었다. 한 원로는 "이건희식 사업은 땅을 깔고 앉아 하는 것이었다. 공장을 짓고 그곳에서 부가가치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재용식은 다른 것 같다. 현금을 가지고 빠르게 움직이는 방식, 새로운 유목민적 방식이다”라고 평했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근저에서 발생했다. 직원들이었다. 그들은 혼란스러워 했다. 어떤 직원은 명함을 몇번씩 바꾸기도 했다. 뭔가 그룹차원에서 큰 변화가 있는데 직원들은 방향도 알지 못했다. 비밀이었다.

그들은 말했다. "빨리 혼란이 끝났으면 좋겠어요." 로열티에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삼성을 포함해 성공한 기업들 직원들에게는 공통적 특징이 있다. 그들은 돈이 아니라 목표, 새로운 가치를 위해 자신을 건다. 이를 로열티라고 한다.

삼성도 과거엔 그랬다. 삼성직원들은 TV를 팔겠다며 그 무거운 브라운관TV를 들고 미국 유통회사 본사로 돌진하며 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들의 관심이라도 끌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미국시장을 개척했다.

지금도 삼성에는 그런 직원이 많을 것이다. 갤럭시노트7 사태에도 수십조원을 버는 경쟁력을 유지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이건희 회장의 말을 떠올린다. "큰 댐도 작은 구멍으로 무너진다. 항상 댐의 구멍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삼성 경영진은 댐의 작은 구멍, 직원들의 떠나는 마음을 이해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경영의 중심축은 항상 이동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기업의 구성원, 직원들은 항상 중심축에 있을수 밖에 없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의 허브 캘러허 전 회장은 이런 말을 했다. “직원 고객 주주 가운데 누가 중요한가란 질문은 경영의 난제라고 한다. 우리는 그것을 난제로 여긴 적이 없다. 좋은 대접을 받은 직원은 고객을 잘 대접한다. 좋은 대접을 받은 고객은 단골이 되어 주주에게 행복을 안겨준다." 그는 이를 신문광고로 내기도 했다. "직원 먼저 employee first, 고객 다음 customer second, 주주 세번째 shareholder third"

리더의 자리는 오래전부터 무거운 자리였다. 리더가 누리는 혜택중 공짜는 없다. 오래전부터 인류는 리더에게 우선권을 줬다. 먹을 것도 먼저 먹게 했다. 리더가 무리보다 강해야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무리를 보호해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몸속에 흐르는 세로토닌의 힘으로 자신감 넘치고 좋은 영양상태를 유지해야 위험속에 가장 먼저 뛰어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리더가 가장 먼저 짝을 고를 수 있게 해주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진화심리학자들은 말한다. 리더가 무리를 보호하려다 죽으면 강한 유전자가 유전자풀에 남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집단은 바보가 아니다. 아무 대가 없이 그 모든 특전을 리더에게 주지 않는다. 공짜는 없다.

#참고한 책들
<평판사회>, <명성경영전략>, <지행33훈>,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 <리더십은 누구의 것인가>, <전략을 넘어 문화로>

(끝)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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