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오피니언] 식별하고 분류하는 '차대번호'

입력 2017-01-30 14:21   수정 2017-03-22 14:52

우리에게 ‘차대번호(VIN: vehicle identification number)’로 알려져 있는 자동차 고유 식별번호가 사용된 것은 1951년부터다. 하지만 여러 나라, 그리고 수많은 공장에서 자동차가 생산되는 만큼 사용하는 일련번호도 제각각이었다.

그러다 1981년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알파벳과 숫자를 섞은 17자리 고유 식별번호 기준을 만들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물론 17자리 알파벳과 숫자의 일련번호를 굳이 알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일정한 규칙이 있다는 점을 참고하면 적어도 자신의 차가 생산된 국가와 공장, 형식 등은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차대번호 앞의 1~3자리는 제조한 나라와 제조사를 의미한다. 4~9자리는 ‘VDS(vehicle descriptor section)’로 불리는데, 자동차의 종류와 모델 정보가 표시된다. 마지막 10~17자리는 ‘VIS(vehicle identifier section)’로 자동차 고유 일련번호가 부여된다. 마치 ‘OO고등학교 O반 OO번 홍길동’으로 나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재미난 것은 당시 NHTSA가 알파벳 문자 중에서 ‘I’ ‘O’ ‘Q’는 배제했다는 점이다. 아라비아 숫자 ‘1’과 ‘0’으로 혼동할 수 있어 식별부호 안에는 넣지 않았다. 연식을 의미하는 코드에서 ‘U’와 ‘Z’, 그리고 아라비아 숫자 ‘0’도 사용하지 않는다. 1980년을 의미하는 코드가 ‘A’라면 25개의 영문 자음에서 5개의 글자가 빠져 2000년의 상징코드는 ‘Y’가 되는 식이다. 이후 2001년은 아라비아 숫자 ‘1’로 시작해 2009년은 ‘9’가 되고, 2010년은 다시 ‘A’로 표시된다. 그러니 적어도 29년 동안 생산되는 차의 연식은 모두 파악할 수 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번호’를 새기는 장소가 ‘차대(車臺)’라는 사실이다. 자동차의 철골 구조물로 흔히 ‘샤시(chassis)’ 또는 ‘섀시’로 불리는 차대는 엔진 등을 걸치는 자동차의 뼈대다. 따라서 차대번호 자체가 하나의 자동차로 여겨지는 게 일반적이고, 임의로 바꾸는 것은 불법행위로 간주된다. 제조사 외에 그 누구도 차대번호를 부여할 수도, 변경할 수도 없도록 한 것도 그만큼 차대번호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국내 자동차 등록대수가 2180만대(국토교통부 기준)를 넘어섰다. 그러다 보니 앞으로 사용할 번호판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용 가능한 문자와 숫자의 조합이 더 이상 쉽지 않아 여러 방안을 연구 중이다.

이런 가운데 나온 목소리가 차대번호 활용 방안이다. 어차피 자동차의 고유 식별표시인 만큼 활용을 고민하면 번호판 부족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얘기다. 개인정보 보호 측면에서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사람의 지문처럼 차대에 새겨져 나온 이상 폐차가 아니라면 바뀔 수 없는 번호라는 점도 이런 주장에 힘을 보탠다.

그렇게 보면 사람의 주민등록번호와 자동차의 차대번호는 태어날 때 부여받고 세상에서 사라질 때 없어진다는 점이 다르지 않다. 그리고 번호로 식별하고, 분류하고, 파악하려는 경향은 보다 심화되고 있다. 요즘 나오는 ‘빅데이터’라는 단어가 결국은 식별하고, 분류하고, 파악하려는 것이니 말이다.

권용주 < 오토타임즈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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