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분리 풀면 대주주 사금고 된다" 논리에…손발 묶인 인터넷은행

입력 2017-02-02 18:32  

커지는 국회 '규제 리스크'

K뱅크 내달 '반쪽 출범' 불가피
민주, 규제완화 반대…은행법 개정안 표류
금융서비스 혁신 막혀 말로만 핀테크 혁명



[ 김일규 기자 ] 일본 전자상거래기업 라쿠텐이 100% 출자한 인터넷전문은행 라쿠텐뱅크는 연평균 자산성장률이 15% 이상으로 빠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2000년 산업자본의 인터넷은행 소유를 전면 허용한 덕분이다.


미국 자동차회사 제너럴모터스(GM) 계열의 알리뱅크는 자동차금융 서비스에 특화해 미국 예금은행 자산 기준 29위로 성장했다. 미국 정부도 산업대출은행(ILC)이란 제도를 통해 산업자본의 인터넷은행 진입을 허용하고 있다. 은산분리 규제가 없는 유럽에선 테스코은행(영국), BMW은행(독일) 등이 활발하게 영업 중이다.

국내에서도 2001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산업자본이 설립하는 인터넷은행 도입이 추진됐으나 무산되면서 인터넷은행 출현이 선진국보다 15년 넘게 늦어졌다.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제한하는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면 은행이 대주주(산업자본)의 사금고가 될 수 있다는 시대착오적 우려 때문으로, 소모적인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금융혁신을 위해선 인터넷은행 도입이 절실하다고 보고 은행법 개정에도 들어갔다.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주도하는 인터넷은행의 혁신이 금융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메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하지만 다음달 본격 영업을 시작하는 첫 인터넷은행 K뱅크에 메기 역할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K뱅크 설립을 주도한 KT는 은산분리 규제로 4%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어서다. 산업자본인 KT가 인터넷은행 지분을 50%까지 보유하고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은행법 개정안은 야당 반대에 부딪혀 있다.

지금대로라면 K뱅크의 최대주주(의결권 기준)는 지분 10%를 보유한 우리은행이 된다.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K뱅크는 오히려 2~3년 안에 문을 닫아야 할 처지에 놓인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준수를 위해 3년간 2000억~3000억원의 증자가 필요하지만, KT로선 증자에 나서기 힘들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에 은행업 본인가를 신청한 카카오뱅크도 마찬가지다. 1분기에 본인가를 받고 상반기 안에 영업을 시작할 계획이지만, 지금 상태로는 카카오가 아니라 한국투자금융지주가 지분 5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금융권 관계자는 “인터넷은행의 최대주주가 기존 은행, 증권사라면 인터넷뱅킹과 다를 게 없다”고 지적했다.

국회에 은산분리 완화를 위한 법안이 다섯 건이나 제출돼 있지만 여야 의원들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등을 이유로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학영·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참여연대가 2일 주최한 인터넷은행 출범 문제 진단 토론회는 사실상 은산분리 완화를 반대하기 위한 토론회가 됐다.

이날 발제를 맡은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2011년 저축은행 사태, 2013년 동양 사태 등을 고려하면 산업자본에 은행을 내줄 수 없다”며 “이미 산업자본의 경영 참여를 허용한 저축은행이 인터넷은행을 소유하게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토론에 참석한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는 “은행법 개정안은 현행 은행법보다 강력하게 대주주에 대한 신용공여를 규제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한 참석자는 “핀테크(금융+기술) 경쟁이 치열한데 한국만 외톨이 신세”라고 꼬집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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