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인류 역사는 기회를 찾아 떠난 '이민의 역사'…7개 테러위험국 이민 막는 미국 행정명령 논란

입력 2017-02-03 16:59  

테러 방지인가 반이민인가


[ 신동열 기자 ] ■NIE 포인트

칸트와 하딘은 이민과 난민 수용에 대해 정반대의 주장을 한다. 칸트는 ”세계평화를 위해서“를, 하딘은 ”구명선 두 척 중 하나라도 살리기 위해서’를 주장한다. 토론해보자.

미토콘드리아…“우리는 아프리카에서 왔다”

인류의 역사는 이민(移民)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의 세포 속에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미토콘드리아는 “그렇다”고 답해준다. 닉 레인이 쓴 ‘미토콘드리아’ 서문에 보면 우리는 17만 년 전 ‘아프리카 이브(African Eve)’라는 할머니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왔다. 모계(母系)로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를 역추적해보면 우리는 모두 이 할머니에 가닿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 먼길을 떠나온 이민자들의 후예들이다.

인류학적 이동을 끝낸 인간들은 한 곳에 머물기 시작했다. 정주(定住)형 문명의 출현이다. 정주형 문명인들은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찾아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정치적, 경제적 조건에 따라 민족, 집단, 가족, 개인 단위로 이동했다. 문명 초기에 기름진 ’초승달 지대‘는 대표적인 이민의 땅이었다. ’총·균·쇠‘의 저자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환경적 차이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고대 게르만인의 대규모 국제 이동, 노르만인과 핀족의 대이동 역시 이민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민족들의 압박이나 탄압을 피하기 위해, 인구 증가를 해소하기 위해, 경작지 부족을 덜기 위해, 마치 아프리카 누떼처럼 이동해야 했다. 성경에 나오는 모세의 유대인 이집트 탈출은 종교적 이유가 작용한 거대한 이민 행렬이었다. 물론 한반도에서도 대이동은 나타났다. 신라시대 벌휴왕 때 일본에 가뭄과 기근이 들어 일본인들이 대거 한반도로 건너왔다는 기록이 있다. 백제 멸망 이후 백제 기술자와 귀족들이 일본으로 넘어간 것도 이민에 속한다.

신대륙 발견과 노예 이동

고대와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면 이민의 현대적 형태가 나타난다. 바로 유럽인의 아메리카 신대륙 이민이다. 18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모국을 떠난 유럽 이민자 수는 약 8000만명에 달한다. 이중 4500여만명이 미국과 캐나다로, 2000만명이 중남미로, 1700여만명이 아프리카나 오세아니아로 옮겨갔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 잘 살아보겠다는 경제적 이유가 가장 많이 작용했고, 정치적·종교적 이유도 많았다.

미국은 그야말로 ’이민자의 나라‘로 불린다. 미국은 원래 인디안 원주민이 살던 땅이었다. 16세기 콜럼버스가 인도(印度)와 거래할 수 있는 새로운 무역항로를 찾다가 발견한 곳이 미국이다. 세월이 흐른 뒤 인디언들은 백인들로 대체됐다.

지금도 인디언들은 “우리 조상들의 땅이다. 이민자들은 나가라“고 한다. 재미있는 역사의 아이러니다. 지금은 미국땅인 텍사스와 캘리포니아 지역은 멕시코 땅이었다. 전쟁으로 강제병합한 미국 정부는 멕시코인들을 미국인으로 인정해주는 선에서 분쟁을 마무리지었지만, 미국내 멕시코인들도 인디언처럼 ”우리 땅“이라고 주장한다. 인디언들이 ”멕시코 너도 나가라“라고 하지 않을까? 이런 미국이 도널트 트럼프 대통령 취임이후 이민을 거부하는 나라로 변하고 있다.

미국 땅에는 슬픈 이민의 역사가 있다. 아일랜드인들이 겪었던 수모보다 더 심한 강제이민의 역사다. 바로 흑인 노예 이동이다. 16~19세기 대서양 노예무역을 통해 아프리카로 실려온 흑인은 1200여만명에 달한다. 이보다 역사가 오래된 ’아랍 노예무역‘으로 끌려온 흑인도 1100만~1800만명 정도 된다.

지구촌은 이민과 난민으로 ‘떠들썩’

이민과 비슷한 난민도 있다. 현대의 이민은 자발적인 이동이고 이민을 받아들이는 나라의 조건을 충족해야 성립되는 반면, 난민은 여러가지 박해를 피해 자기 나라를 떠나 피난처를 구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최근 지구촌은 시리아 난민사태로 홍역을 겪고 있다. 내전과 독재, 종교 탄압을 피해 시리아인들이 세계 각지로 흩어지고 있다. 미국은 시리아 등 이슬람 난민과 이민을 거부하기에 이르렀고, 영국도 유럽연합(EU)이 할당해주는 난민에 손사레를 치고 있다.

임마누엘 칸트는 ’영구 평화론‘에서 ”외국인이 다른 나라의 영토에 들어갔을 때 그가 적대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한 적대시하면 안 된다“고 썼다. 칸트가 세계 평화를 위해 이렇게 말했지만 이슬람의 테러는 실재한다.

게럿 하딘(G. Hardin)은 이민과 난민을 모두 반대한 대표적인 생물학자다. 두 척의 구명보트 중 한 척엔 적절한 인원과 적절한 물자가 있고, 다른 한 척엔 정원초과에다 물자부족이라면, 적절한 배가 구해줘야 하느냐에 대해 하딘은 미래생존을 위해 구해주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민, 난민 논란이 하딘의 주장에 가까운 것인가?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경제 어려울수록 반이민 정서 강해져 "불법 이민이 일자리 만든다" 반론도

■NIE 포인트

트럼프 대통령이 일부 국가 이민을 금지시킨 이유를 친구들과 토론해보자. 이민과 난민의 차이, ‘이민의 패러독스’도 함께 생각해보자.

‘이민으로 세워진 나라’ 미국이 이민자들에게 빗장을 걸어잠그는 데는 일자리·복지·테러·종교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유럽 국가들의 이민·난민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하지만 제조업 강국이 이민자를 불러오고 자유시장경제가 이민자를 끌어들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불법이민이 많으면 오히려 일자리와 복지 문제가 해결된다는 이른바 ‘이민 패러독스’도 있다.

테러 예방 위해 이민 막겠다는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슬람 7개 국가 국민의 이민을 한시적으로 금지한 명분은 ‘테러로부터의 미국인 보호’다. 그는 반이민 행정명령 서명에 대한 비난이 고조되자 “반이민 행정명령을 예고했더라면 ‘나쁜 놈들’이 벌써 미국으로 몰려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종교·인종 차별이라는 논란을 의식한 듯 “7개국 국민에 대한 일시적 입국 금지가 무슬림 입국 금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테러 위협으로부터 미국민을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민 차단이 테러리즘에 맞서기 위한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조치는 단순히 테러 위협 차단을 넘어 일자리·복지 등과 맞물려 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도 이민 금지의 배경이다. 트럼프는 무슬림 차별이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기독교도를 우대하겠다는 발언 등을 근거로 종교적 차별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애덤 콕스 뉴욕대 교수는 “이번 조치는 종교와 인종차별”이라고 비난했다. 미국에서조차 반이민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비록 일시적이라고 해도 이민 금지가 단순한 테러 방지를 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美국민 “이민자가일자리 빼앗는다” 불만

트럼프 대통령이 일시적 이민 금지의 이유로 ‘테러 예방’을 강조했지만 속사정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이민자가 자국민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인식이 강하다. 지난 몇 년간 유럽 국가들이 시리아 등에서 유입되는 이민·난민으로 국론이 분열되는 홍역을 치른 것도 비슷한 이유다.

복지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은 자국민의 세금으로 외국인을 먹여살린다고 생각한다. 영국이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를 결정한 배경에도 이런 인식이 깔려 있다. 일반적으로 경제가 불안하고 고용시장이 녹록지 않을 때 반이민·반난민 정서가 강해진다. 때로는 선거철에 정치인들이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을 자극하면서 반이민 정서를 부추기기도 한다.

참고로 이민(immigration)은 더 나은 삶을 찾아 다른 나라로 자발적으로 떠나는 경우를 일컫고, 난민(refugee)은 여러 박해나 굶주림 등으로 자신의 나라를 떠나 피난처를 찾는 것을 뜻한다. 난민은 주로 내전과 독재, 종교 탄압으로 자유를 빼앗기고 생명을 잃을 위험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난민이 망명을 신청하면 해당 국가는 임시 숙소와 음식을 제공해야 한다. 해당 국가가 요구하는 자격을 충족하지 못하면 불법 이민이 된다.

밀턴 프리드먼의 ‘이민 패러독스’

노동경제학에서는 이민을 노동 공급 증가라는 관점으로 본다. 이민이 노동력 부족을 메워준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독일 인구가 8280만명으로 신기록을 기록하고 제조업이 여전히 강한 것은 이민·난민자의 영향이 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민·난민의 유입은 사회불안 요소이기도 하다. 메르켈 독일 총리가 난민의 무차별 수용에서 ‘제한적 수용’으로 입장을 바꾼 것도 이런 사회불안을 우려한 조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이민을 경제학적으로 접근했다. 이민이 일자리나 복지와 연관돼 있어 이민을 무한정 늘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프리드먼은 불법 이민은 이민자나 거주자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분석한다.

불법 이민자들은 어떤 복지혜택도, 어떤 사회적 안전보장도 받지 못하고 대부분 힘든 일을 한다. 이것은 거주민에게일자리를 만들어주는 좋은 기회가 된다. 이것을 프리드먼은 ‘이민의 패러독스’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는 이 같은 패러독스가 있는 사회는 불공평한 요소들이 남아 있어 사회 갈등이 필연적으로 일어나 오래가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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