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유연화하지 않으면 기업들이 가라앉는다"
민주투사 출신의 '脫이념·현실주의'에 시선집중
우상호 "노무현처럼 역전 드라마"…당내 경선이 관건
[ 홍영식 기자 ] “젊은 시절 화염병과 짱돌을 들고 많이 싸워봤지만 투쟁으로 풀리지 않는 현실을 목격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안희정 충남지사가 지난 2일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그는 이른바 ‘민주투사’ 출신이다. 이런 그가 ‘탈이념, 현실주의’를 내세우며 대선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그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10%를 넘기며 2위로 올라섰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에 크게 밀리지만 최근 상승세가 가파르다는 점에 정치권은 주목한다. 당초 ‘문재인 페이스메이커’ ‘불펜 투수’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으나 이젠 ‘대항마’로 자리매김했다.
◆고교 때부터 운동권에 몸담아
안 지사는 1964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희정이란 이름은 그의 아버지가 박정희의 정(正)자와 희(熙)자를 바꾸어 지은 것이다. 안 지사는 충남 연무대중 3학년 때 함석헌 선생이 발간한 ‘씨알의 소리’를 읽은 것을 계기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1980년 남대전고에 입학했지만, 광주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내용의 편지를 잡지사로 보낸 게 문제가 돼 제적당했다. 서울 성남고 1학년으로 재입학했으나 군사훈련을 시키는 분위기를 못 견뎌 자퇴했다. 그는 “시위 현장을 다녔으나 고교 중퇴생 신분으로 한계가 있어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고려대 철학과)에 들어갔다”고 했다.
1994년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사무국장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고, 2001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 경선캠프 사무국장을 맡아 대선 승리를 이끌었다. 한때 ‘좌희정 우광재’로 통한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2007년 ‘친노(친노무현) 폐족’을 선언한 뒤 2008년 7월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선출됐으며, 2010년 충남지사에 당선됐다.
◆설 연휴 전후 지지율 급상승
1월 초만 해도 안 지사 지지율은 3~4%대에 머물렀으나 설 전후를 계기로 급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안 지사의 현실주의와 안정성이 부각되면서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주요 현안에 대해 당내 다른 주자들과 뚜렷한 차별화 행보를 하고 있다. 문 전 대표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연기, 군 복무 단축, 재벌개혁 주장 등에 대해 날을 세웠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투쟁으로 풀리지 않는 현실을 목격했다”며 “평범한 우리 이웃의 얼굴을 한 정치와 신뢰할 수 있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또 “새 정치는 낡은 이념 논리가 아닌 현실 문제를 풀고 국익을 위해 경쟁하자는 것”이라며 “전통적 지지기반으로부터 버림받을지도 모르는 두려움의 길이지만, 뚜벅뚜벅 가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노동 유연화를 하지 않으면 기업들이 가라앉는다”고 했다.
안 지사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업가들과 새 시대를 동업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대연정’ 추진 방침을 밝힌 것은 노선이 다른 정당들과도 손잡을 수 있다는 뜻으로, 중도-보수 쪽으로 지지세를 넓혀 나가겠다는 의미다.
◆당내 기반 취약 등 한계도
안 지사가 ‘문재인 대세론’을 허물 수 있을지에 대해 당 안팎에선 의견이 교차한다. 완전국민경선제와 결선투표제 도입은 안 지사에게 기회를 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완전국민경선제를 하면 비문(비문재인)성향의 국민들이 투표에 대거 참여해 역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안 지사가 문 전 대표를 엎을 수도 있다. 예전의 노무현 대통령 때처럼 극적인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분위기를 띄웠다.
당내 기반이 취약해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안 지사의 최근 차별화 행보에 대해 당내뿐만 아니라 진보 진영 일각에서 “전향했다”는 말까지 나오는 등 ‘보수 프레임’ 비판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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