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교사의 신체를 몰래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유포한 학생들의 행위가 사회문제화됐다. 교권침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회 교육문화위원으로서 국정감사를 통해 지적한 바 있지만 폭언이나 폭행, 성희롱 등 교권침해 사례는 지난 7년간 3만여건에 달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먼 옛날얘기처럼 들린다.
필자에게도 평생의 은인이자 스승이 있다. 세고에 겐사쿠(瀨越憲作) 선생님이다. 일본 유학에서 세고에 선생을 처음 뵌 때가 1963년이었으니 선생이 74세, 필자가 10세였다. 사실 할아버지와 손자의 터울로 사제 관계가 어려운 나이 차였고, 지인을 통한 제자 입문 요청에 고령을 이유로 이미 고사한 터였다. 그 후 인사를 간 자리에서 필자를 보고는 그 자리에서 바둑을 두자고 하셨다. 어린 필자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석 점을 깔고 뒀는데 이겼다. 두 점으로 한 판 더 두자고 하셨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지도대국을 1년에 한 판 둘까말까 엄격하기로 이름난 세고에 선생이 어린아이를 상대로 거푸 2판을 두다니…. 그 바둑도 필자가 잘 뒀다. “이 아이는 오늘부터 죽는 날까지 내가 데리고 있겠다.” 세고에 선생의 한마디로 필자의 거취가 결정됐다. 그날로 내제자가 됐고, 곧 선생 댁으로 들어갔다.
세고에 선생님 댁에서 9년 동안 수련을 쌓았지만 선생에게 직접 지도받은 대국은 열 판이 채 안 됐다. 선생의 이미지는 대단히 엄하고 무서운 쪽이었다. 선생은 필자를 처음 본 순간부터 재주는 넘칠 만큼 있다는 걸 알아차리셨다. 문제는 인품. “과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바둑 명인에 걸맞은 인격과 품성을 갖출 수 있을까”, 고령에도 불구하고 필자를 받아들인 이유는 그것 때문이다. 필자를 사람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을 느끼신 것이다.
“사람의 도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이 되려면 인격, 인품, 인성을 모두 갖춰야 한다” “답을 주는 것은 스승이 아니다. 그냥 길을 터주고 지켜봐주는 게 스승이다. ” 세고에 선생님의 가르침은 이창호라는 제자를 받아들이고 길러내는 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가슴속 깊이 남아 있다. 사제간 정(情)이 갈수록 메말라가는 우리 교단의 안타까운 현실을 보면서 세고에 선생님의 깊은 울림이 다시 한번 진하게 전해져 온다.
조훈현 < 새누리당 국회의원 chohoonhyun@naver.com >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