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명문대서 나오란 법 없어…이런 벽 깨야 창의 인재 나온다"

입력 2017-02-05 20:17  

4년 임기 마치고 미국 돌아가는 강성모 KAIST 총장

KAIST라고 모두 잘할순 없어…충남대와 벽 허물고 의학 협력

'창업과 공학 혁신'의 4년
지난해 최초 창업석사 도입…학생들에게 혁신 DNA 심어

KAIST의 새 먹거리는 의료
세종시에 의과전문대학 추진…바이오 기기 '테스트베드' 역할



[ 박근태 기자 ]
강성모 KAIST 총장이 4년 임기를 마치고 오는 22일 퇴임한다. 17일 대전 KAIST 교내에서 열리는 학위수여식이 마지막 공식활동이다. 강 총장은 지난 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대학은 졸업생이 도전 정신과 창의성을 가지고 사회로 나가 어떤 일을 하고 무엇을 잘하느냐로 평가될 것”이라며 “대학의 책무도 노벨상을 받는 연구가 아니라 미래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키우는 일에 있다”고 강조했다.

강 총장은 연세대 전자공학과 4학년 때인 1969년 미국으로 건너가 버클리대에서 공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AT&T 벨연구소 연구원, 일리노이대 어바나 샴페인대와 UC샌타크루즈 공대학장을 거쳐 2007년부터 4년간 한인 최초로 4년제 대학인 UC머시드 총장을 지냈고 2013년에는 KAIST 총장에 부임했다.

별명이 ‘부드러운 선장’인 강 총장은 서남표 전 총장의 퇴임 과정에서 불거진 학내 갈등을 원만히 수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 총장은 “세계 대학들은 저마다 기준으로 실력 있는 학생을 뽑는 데 주력하고 있지만 한국은 정부가 대학 혁신에 지나치게 간섭한다”며 “대학이 그런 인재를 키우려면 긴 안목을 갖도록 자율성을 주고 기다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퇴임 후 곧바로 미국으로 돌아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KAIST에 오기 전 UC샌타크루즈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KAIST 총장 임기가 끝나면 다시 돌아가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로 학교 측과 약속했다. 원래 전공인 전기전자컴퓨터공학 과목을 가르치고 연구도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학교가 큰 혼란기에 있을 때 총장을 맡았다. 가장 먼저 뭘 했나.

“무엇보다 학교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했다. KAIST라는 다섯 글자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했다. 지식(knowledge)을 창출하고 앞으로 약진(advancement)하면서도 뛰어난 인성(integrity)을 갖추자고 주문했다. 무엇보다 그런 변화를 이어갈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과 서로를 믿는 신뢰(trust)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 총장 재임 기간 KAIST에선 해양학과와 기계공학과, 전산학과와 정보보호대학원이 통합되는 등 몇몇 학과가 사라졌다. 교수와 학생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큰 학내 분규로 이어지진 않았다.

▷지난 4년간 한국 생활에서 느낀 점도 많을 것 같다.

“한국 사회는 벽이 너무 많다. 그 벽을 허물 필요가 있다. 2015년 KAIST 옆에 있는 충남대와 벽을 텄을 때도 왜 그러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두 학교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도 나왔다. 그건 낡은 생각이다. 애플 신화를 이룬 스티브 잡스는 하버드 예일대 출신이 아니다. 오리건주 작은 대학을 중퇴했다. 하지만 그는 창의적인 사람이었고 애플이 스마트폰 분야의 세계 1위가 된 원동력이 됐다. KAIST 학생이 충남대 학생보다 창의력이 좋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은 두 학교가 자유롭게 오가며 의과학 분야에서 함께 협력하고 있다.”

▷벽 허문다고 창의력이 생기지는 않는다.

“종종 오바마 전 대통령이 책상 위에 다리를 올려놓고 보좌관과 농담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여유를 가지고 잡담을 하다보면 새로운 아이디어도 얻는다. 한 예로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낸드플래시를 탄생시킨 핵심 기술을 개발한 강대원 전 벨연구소 박사는 동료와 밥을 먹으며 잡담을 하다 후식으로 나온 치즈케이크가 층층이 쌓인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수평적 문화가 아쉽다. 처음 KAIST에 왔을 때 100m 밖에서 긴장한 모습으로 총장인 내게 인사하던 학생들이 있었다. 그런 거 하지 말고 자유롭게 하자고 했다.”

▷당장 기업이 데려다 쓸 맞춤형 인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한쪽에선 창의성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나온다. 보통 큰 기업은 미래를 내다볼 창의적 인재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매일매일 경쟁의 연속인 중소기업은 그걸 기다릴 여력이 없다. 지금은 그런 환경에 적응력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다. 당장 회사에 가서 일할 수 있는 역량과 함께 잠재력을 가진 인재 말이다. 그런 인재를 키우는 게 오늘날 대학의 책무다.”

▷한국의 대학 혁신 어떻게 해야 하나.

“혁신이라는 건 위에서 시키는 대로 되는 게 아니다. 샘물처럼 밑에서 차올라오는 게 중요하다. 아무리 뛰어난 교육부 관료도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다. 대학이 각자 방식으로 자율성을 갖고 스스로 길을 찾도록 해야 한다. 수십년이 걸리더라도 말이다. 공학 혁신도 한번 실험하게 해보면 된다. 이 학교 저 학교마다 방법이 다르다. 예를 들어 해양 분야에서 서울대가 부산대보다 낫다는 법은 없다. 모든 걸 명문대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얼마 전 일본 노벨화학상 수상자는 한국의 첫 노벨상 수상자가 반드시 서울대나 KAIST에서 나오리란 법은 없다고 했다.”

▷KAIST를 이끌며 잘한 일을 꼽으면.

“창업 지원 전담조직인 KAIST창업원을 설치한 일이다. 한국에 와서 기업인들을 만나보니 ‘앞이 보이지 않는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데 사람도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창의성이 있는 인재가 되려면 창업을 한번 해봐야 한다. 사업이 망하면 3대가 망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제 KAIST 학생 75%는 창업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중점을 둘 분야는 무엇인가.

“의료에서 많은 먹거리가 창출될 것이다. KAIST에서 만드는 바이오센서 같은 기술도 필요하지만, 실제 융합연구를 시연할 테스트베드가 중요하다. KAIST의 로봇학자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들이 미래 병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학내에 설립된 테스트베드에선 이미 변화가 시작됐다. 세종시에 설립할 융합의과학대학원과 충남대가 공동 운영할 500병상 규모 병원에 거는 기대도 크다.”

▷어떤 총장으로 기억되고 싶나.

“KAIST는 학생 중심의 연구대학이 돼야 한다. 진심을 담아 미래 인재가 될 학생을 대했던 총장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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