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 사태'의 추억

입력 2017-02-06 17:29   수정 2017-02-06 18:27



(하영춘 편집국 부국장) 신한금융은 자회사경영위원회(자경위)를 7일 열어 차기 신한은행장을 결정한다고 한다. 아마 위성호 신한카드 사장이 차기 행장에 내정된 모양이다. 재일교포 주주와 신한은행 사외이사들에게 이미 통보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서열 1위(조용병 신한은행장)가 차기 신한금융 회장으로 내정됐으니, 서열 2위(위 사장)가 신한은행장이 되는 건 당연하다’는 논리도 나왔다. 이런 논리를 확대적용하면 앞으로 신한금융 회장은 신한은행장이, 신한은행장은 신한카드 사장이 돌아가며 맡게 되는 ‘서열의 법칙’이 성립된다.

◆다시 떠오르는 ‘신한사태’

위 사장 내정설과 맞물려 다시 떠오르는게 이른바 ‘신한사태’다. 2010년 9월이니 벌써 6년하고도 4개월전이다. 위 사장이 신한사태 당시 일정한 역할을 하고 이후 재판과정에서 위증을 한 혐의가 있는 만큼 신한은행장으로 적절하지 않다는게 시민단체와 야당 국회의원들의 주장이다. 신한은행 사외이사 일부도 시시비비를 가린 후에 은행장으로 선임하는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은행 노조도 “신한사태의 악몽이 재연되지 않도록 현명한 선택을 촉구한다”고 밝혀 위 사장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나타냈다. 6년이 훨씬 지난후에 신한사태의 추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른바 ‘신한사태’란?

일부에서는 라응찬 당시 신한금융 회장과 신상훈 당시 신한금융 사장의 경영권 다툼이 신한사태의 본질이라고 한다. 권력욕에 사로잡힌 최고 경영진간 이전투구식 다툼으로 인해 신한금융의 명예에 흠집이 났다고 두 사람을 싸잡아 비판한다.

당시 취재 기자였던 내 기억으론 아니다. 당시 라 회장과 이백순 신한은행장이 무리하게 신 사장을 검찰에 고소했던 게 신한사태의 전말이다. 서울고법 형사3부도 2013년 12월26일 항소심 판결문에서 "이 사건은 라응찬 전 신한지주 회장과 이백순 전 행장이 신 전 사장을 고소하면서 시작됐다"며 "고소 경위와 의도에 석연치 않은 점이 엿보이고 고소 내용도 대부분 사실이 아니었다"고 언급해 신한사태의 본질을 분명히 했다.

서울고법 재판부는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신 전 사장에게 벌금 2000만원을 선고했다. 반면 사태 유발자였던 이백순 전 행장에게는 원심과 같이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신 전 사장은 은행이 당초 고소했던 혐의사실에 대해 대부분 무죄판결을 받았다. 신 전 사장 등은 최종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위성호 사장은 신한사태와 무슨 관련?

당시 위 사장은 지주사 부사장이었다. 홍보 등 대외업무를 맡고 있어 라응찬 회장과 신한금융의 대변인 역할을 했다. 본심이야 어쨌든 그랬다. 당시 출입기자들이 신한사태하면 당연히 위 사장을 떠올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월급쟁이로선 어쩔수 없었을 거다. 시키는 대로 안하면 자리를 내놓을 수 밖에 없어서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지금 문제되는 건 아마 그 후 재판때 발생한 일인 모양이다. 시민단체인 금융정의연대는 지난 1일 서울중앙지검에 위 사장을 위증과 위증교사죄 혐의로 고발했다. 금융정의연대는 "2010년 신한사태 당시 위 사장이 신한금융지주 부사장으로서 신한사태를 기획·실행했을 뿐 아니라 진상을 은폐하려고 검찰 조사와 법원에서 위증과 위증교사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신한사태에 대한 공판과정에서 위 사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위증했다고 주장한다. 2009년 박연차 회장의 비자금 사건 때 라 전 회장이 박연차 회장에게 50억원을 송금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라 전 회장도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됐다. 당시 라 회장의 참모였던 위 사장은 채 모 변호사를 선임해 라 전 회장의 변호를 맡게 했다. 수임료 2억원은 신한 그룹의 임원들이 각출하여 지급한 뒤 나중에 이희건 명예회장의 자문료에서 보충했다. 위 사장은 신한사태 재판에 출석해서는 채 변호사 선임이 신 전 사장을 위한 것이었다고 거짓 진술했다는게 정의연대의 주장이다.

이 단체는 이와함께 신한은행이 남산 자유센터에서 당시 이명박 정부의 실세에게 3억원을 전달한 사실이 드러나자 위 사장은 한 관계자에게 법원에서 거짓 진술을 하도록 강요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금융정의연대는 "이런 혐의가 있는 위 사장이 차기신한은행장으로 선임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해 신한은행장 선임에 영향을 주기위해 고발했음을 분명히 했다.

◆야당과 신한은행 노조의 주장은 무엇?

금융정의연대의 고발에 맞춰 민주당과 국민의당도 공식 입장을 밝혔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지난 5일 현안브리핑을 통해 “금융권 수장 인선, 철저한 검증과 투명한 경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기 대변인은 금융정의연대의 고발을 계기로 은행장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투명한 선발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한금융이 “간섭하지 말라”며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해선 “또 다른 위기를 만들 뿐”이라고 우려했다.

6일엔 국민의당이 이어받았다. 국민의당 정무위원회 소속 김관영 의원은 ‘관치금융 못지않은 ‘방치(放置)금융’의 폐해를 경계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김 의원은 성명서에서 “대통령 탄핵사태에 따른 권력공백기에 금융당국이 아예 손을 놓음으로써 ‘방치금융’이 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며 “금융당국은 금융기관장 인사와 관련된 지도 및 감독 책무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차기 행장 인사와 관련한 조용병 금융지주회장 내정자와 위성호 행장 후보의 사전교감설, 한동우 회장의 명예회장 내정설 등 투명하고 공정한 인사를 저해하는 내부결탁행위에 대해서도 금융당국이 철저하게 조사ㆍ감독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검찰에 대해서도 “시민단체의 고발사건을 엄정하고 신속하게 수사해서 결론을 내려줄 것”을 요구했다.

신한은행 노조도 이날 ‘조직의 건강한 발전과 직원들에게 비전을 되찾아줄 은행장 선임을 촉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신한사태의 악몽이 재연되지 않도록 현명한 선택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위성호 내정설’은 맞기나 한가?

언론들이 내정설을 쓰는 것을 보면 맞긴 맞는 모양이다. 한동우 회장은 이미 지난달 재일동포 주주 모임인 간친회 회장에게 전화해 ‘조용병 회장-위성호 행장 내정 사실’을 통보한 뒤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얼마전에는 신한은행 사외이사들에게도 불가피성을 설명했다는 후문이다. 신한금융 2위 계열사인 신한카드를 이끌면서 빼어난 경영능력을 보여준 만큼 차기 신한은행장으로 적합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내면을 뜯어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돌아다니는 얘기를 들어보면 한 회장이 처음부터 위 행장 카드를 꺼낸 것 같지는 않다. 능력과 별개로 신한사태와 관련된 만큼 신한사태 재현가능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라응찬 전 회장 등의 ‘압력’을 의식할 수 밖에 없었다는 얘기들이 근거없이 돌아 다닌다.

◆신한사태는 재현될까?

신한금융은 시민단체의 고발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만큼 위성호 행장 카드를 밀어부친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맞는 결정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시민단체의 미주알고주알 주문에 거대 금융그룹의 원칙이 흔들릴 수는 없다. 신한금융은 고발사태의 배경에 신상훈 전 사장이 자리잡고 있다는 ‘음모론’도 제기한다. 불순한 의도로 고발사태가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그런만큼 위성호 행장 카드를 밀어 부칠 것으로 보는게 금융계 많은 사람들의 시각이다.

관심은 신상훈 전 사장 측 반응이다. 주변 상황을 종합하면 ‘신상훈 전 사장 개입설’은 맞는 것 같다. 신 전 사장은 한때 부하직원들이었던 위 사장 등이 법정에서 거짓진술을 한데 대해 분노를 표출해 왔다. 법적 절차가 마무리되면 이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얘기도 숨기지 않았다. 물론 사석에서다. 대부분 무죄로 판결된 관련자들이 7년여동안 당한 설움과 고통을 언급하면서다. 이런 정서를 감안하면 위성호 행장이 선임되더라도, 신 사장측의 법적 문제제기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 잊어 창고속에 묻힌 것 같았던 신한사태가 다시 눈앞에 나타나게 될 것 같다. ‘추억’이 아닌 ‘현실’로 말이다. (끝) / ha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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