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이심기 특파원) 올해 현대자동차의 ‘슈퍼볼’ 광고는 사전에 공개되지 않았다. 미국프로미식축구(NFL) 챔피언 결정전인 ‘슈퍼볼’은 1억1000만명이 넘는 시청자가 생방송으로 시청한다. 광고주들은 30초당 500만달러(60억원), 초당 16만달러(약 2억원)를 아낌없이 쓰며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광고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기업들은 경기전에 광고의 일부 혹은 전체를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슬쩍’ 혹은 대놓고 흘린다. 티저 마케팅이다. 올해 슈퍼볼에 광고를 낸 51개 업체중 사전 일부라도 광고필름을 공개하지 않은 업체는 현대차가 유일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전에 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경기 당일 슈퍼볼 광고를 현장에서 찍어 거의 생중계하다시피했다.
슈퍼볼 경기가 벌어진 5일 오후 6시반(미국 동부시간) 텍사스 주 휴스턴의 NRG 스타디움에는 해외에 파병된 군인을 둔 가족들이 박스석에 초청됐다. 같은 시간 폴란드 지역에 파견된 미군 부대 군인들이 슈퍼볼 중계를 보기 위해 막사안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앞에 모였다.
이중 3명을 부대원이 따로 불러 별도로 설치된 부스안으로 안내했다. 캄캄한 부스안에 불이 켜지면서 현대차가 설치한 360도 가상현실 공간에 NRG 스타디움 전경이 들어온다. 그리고 군인이 앉아있는 의자 바로 옆 스크린에 아내와 남편, 아이들이 환하게 웃으면 반긴다. 예상치 못한 모습에 군인과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기뻐한다.
카메라는 실시간으로 이들의 모습을 찍어서 90초로 편집한 뒤 경기 종료와 함께 내보냈다. 다큐멘터리 형식의 이 광고 제목은 ‘더 나은 작전’(Operation Better). 현대차는 이날 다른 자동차 메이커와 달리 유일하게 제품 광고를 하지 않았다. 마지막 장면에 ‘현대차와 함께 더 나은 운전을(better dive us, Hyundai)‘라는 문구만 삽입했다.
이날 경기는 사상 첫 연장전 승부끝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골수팬인 뉴 잉글랜드 패트리어트(patriots)가 역전승을 거뒀다. 공교롭게도 이날 경기를 중계한 폭스방송이 패트리어트의 우승 세리머니를 끝내고 방송을 마무리하면서 처음으로 내보낸 광고도 현대차였다. 사전에 계약된 물량이었겠지만 현대차는 횡재를 한 셈이다.
일부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의식한 애국 마케팅을 했다는 지적도 나왔지만 시청자들의 호평은 이어졌다. 외신들은 “현대차의 실시간 광고로 파병 군인들이 가족과 함께 슈퍼볼을 즐길 수 있었다”며 찬사를 쏟아냈다. 유튜브 조회수도 하루만에 700만건을 돌파했다.
이날 현대차 광고에 대한 반응중 압권은 트위터에 올라온 한 줄 광고평이었다. “이번 슈퍼볼 광고의 승자는 단연 현대차다. 그리고 한 가지만 부탁하자. 제발 광고만큼만 차도 좀 잘 만들어라.” (끝)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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