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IT기술 앞선 민간은 R&D, 군은 시장창출 협력
'소비형 안보'에서 벗어나 '생산형 국방'으로 거듭나야
안영수 <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4차 산업혁명 토대는 방위산업
다보스 포럼에서 제기된 4차 산업혁명의 화두는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일본 등 주요국 정부의 연구개발(R&D) 정책을 바꿀 정도로 충격을 주고 있다. 로봇산업으로 통칭되는 드론(무인항공기)·무인차·무인선박과 사물인터넷(IoT) 등 신산업의 등장은 자동차·조선·가전·정보기술(IT)을 비롯한 3차 산업혁명 기술에 기초한 글로벌 리딩 국가와 기업의 순위 구조를 크게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인공지능(AI) 기술 기반의 이들 신산업군은 현재의 직업, 삶의 양식 변화 등 우리 미래가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산업 발전을 추동하는 혁신기술의 상당 부분은 국방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다. 현재 우리 삶의 일부가 되고 있는 컴퓨터, 인터넷에 기반을 둔 3차 산업혁명도 국방기술에서 출발했다. 컴퓨터는 2차 세계대전 중 군사용 목적으로 개발된 컴퓨터 에니악(ENIAC)에서 출발했으며, 인터넷은 냉전 시절 핵무기에 대응할 목적으로 개발됐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드론 역시 1980년대부터 각종 전투에 활용된 바 있다. 지금은 최첨단 전자·IT를 이용, 수십 시간 체공이 가능한 드론을 수백㎞ 떨어진 지상에서 통제할 수 있을 정도다. 2차 세계대전에서도 활용된 바 있는 로봇은 16년 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활용한 뒤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민간 드론시장은 약 20억달러, 로봇은 200억달러(자율차+로봇)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오락용을 제외한 진짜 드론은 4억달러, 고급기술 적용 로봇은 10억~20억달러 시장 규모에 불과하다. 세계 드론·로봇시장 규모는 60억~70억달러로 초기 시장 형성 단계다.
시장 규모가 아직은 미미함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드론·로봇산업을 주목하는 이유는 기술 혁신성과 융합성 때문이다. 기계공학 중심의 전투기·로봇은 앞으로 전자·IT·인공지능의 융합기술 중심으로 바뀌게 된다. 이는 모든 산업의 생산 방식과 가치사슬 구조에 근본적 변화를 초래, 우리와 같은 후발국가에 새로운 발전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은 1991년 국방과학연구소(ADD) 주도로 군용 무인 정찰기인 ‘송골매’를 개발한 이후, 중고도·사단급·군단급 무인기 등 다양한 무인기를 개발·생산 중이다. 민간 분야는 2000년대 중반 대한항공의 소형 무인기 개발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틸트 로터형 스마트 무인기 개발에 이어, 최근에는 중소기업 유콘이 자체 개발한 소형 무인기를 군용으로 납품하는 등 활성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상 로봇은 10여년 전부터 ADD와 민군기술협력사업의 형태로 꾸준히 R&D가 이뤄졌으며 제품화를 위한 준비 단계에 있다. 민간 분야는 연간 약 4조원(2015년) 시장 규모로 산업화가 상당히 빨리 진행됐으나 제대로 된 로봇인 전문 서비스용 로봇시장은 2600억원 규모에 불과하다. 해양 드론은 군용 어뢰기술을 활용한 무인 잠수정 및 민군 겸용 형태의 무인 수상정 등이 개발 중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드론·로봇기술은 선진국 대비 낮은 수준이며 최첨단 기술이 적용되는 군수 분야는 일부 수입대체 단계에 있으나 민수용 드론은 연간 100억원에도 못 미치는 내수시장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로봇은 시장 형성은 돼 있으나 고성능 제품들은 여전히 수입 중이다.
초기 시장을 조기에 산업화해 4차 산업혁명을 견인하고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군수시장 기반의 민군 협력에 의한 산업발전 전략이 필요하다. 그동안 국방 분야의 드론·로봇 R&D 투자 규모는 9300억원, 향후 5년간 계획도 32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등 총 1조2500억원 이상이다. 또 2025년까지 최소 2조~3조원 규모 이상의 드론·로봇 생산이 예상돼 총 3조~4조원 이상의 시장이 담보돼 있다. 국방은 정부가 시장을 보장해주는 확실한 테스트베드다.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IT를 보유해 무인화와 인공지능 기술개발 그리고 이에 기반한 드론·로봇 개발에 상당히 유리하다. 따라서 민간은 기술 개발을 주도하고 국방은 시장을 창출하는 새로운 형태의 민군 융합 산업발전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민간 진입이 원천적으로 차단되고 있는 현행 국방 무기체계 R&D 및 획득 시스템의 근본적 개혁과 규제 개선이 시급하다.
한국 국방비는 40조원으로 정부 예산의 10%이며 복지·교육에 이어 세 번째다. 그럼에도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트럼프 변수(전시작전권 조기 환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요구)로 국방비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최근 국내 경제는 주력 제품의 수출 감소와 내수 부진에 따른 제조업 생산 감소로 실질 실업자 수는 450만명, 청년실업률은 9.8%로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 경기 침체로 재정 수입은 감소하는데 국방·실업·복지 등 국민 세금 부담은 크게 증가하는 것이다.
전쟁 중인 이스라엘은 국가안보의 방위산업 발전 연계 전략으로 경제 발전과 고용 창출을 동시에 이뤘다. 제조업 생산 10.5%, 수출 13%, 고용 14.3% 등 모든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국가 대표 먹거리로 만들었다. 특히 2000년대 초 10.7%에 이르던 고(高)실업률을 방산 수출산업화를 통해 10년 만에 절반으로 감소시켰다. 그 배경은 ‘수출 없는 개발은 없다’는 국방 R&D 전략과 지속적 민군 기술융합 병행 전략, 국방과 민간을 구분하지 않는 국가 단위의 통합적 산업정책 덕분이다.
올해 한국 정부의 국방 R&D 비중은 전체 R&D의 14.3%로 미국·영국에 이어 세계 3위이며, 전년 대비 정부 R&D 증가액의 66%를 차지하는 등 큰 폭의 증가 추세에 있다. 이와 같은 대규모 국방예산을 민간과 접목해야만 현재의 생산·수출·고용위기 극복이 가능하다. 이스라엘도 20년 전에 성공한 일이다. 방산 기반으로 미국이 이끈 3차 산업혁명, 2000년대에 이뤘던 전자·IT 기반을 잘 활용한다면 우리도 드론·로봇 육성으로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수 있다.
국방도 소비형 안보의 틀에서 벗어나 이제는 국가 경제와 새로운 고용 창출에 기여하는 생산형으로 거듭나야 한다. 강한 안보→방산 육성→경제발전→일자리 창출의 선순환 구조를 위한 창의적 산업정책 수립이 시급하다. 5년 이내에 방위산업의 신규 고용을 현재보다 2배 이상 늘릴 수 있다.
이를 위해 청와대 내에 방산정책 컨트롤타워를 설치, 부처 단위가 아니라 국가 총량 단위의 민·군 간 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 국방, 이제는 첨단기술로 국가 경제와 일자리도 책임져야 할 때다.
안영수 <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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