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DNA 재창조' 야심찼는데
항공권·숙소 역경매 사이트로 출발
세상을 바꿀 서비스로 주목받았지만 닷컴 거품 꺼지며 주가 974달러 → 6달러
닷컴 거품 붕괴 상징서 '화려한 부활'
최고경영자로 인수합병 전문가 영입
부킹닷컴 인수하며 매출·주가 '껑충'… 2010~2015년 총이익 연평균 35% ↑
[ 이상은 기자 ] 1999년 3월30일, 미국 코네티컷주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지 11개월밖에 되지 않은 적자 인터넷회사 프라이스라인이 뉴욕증시에 상장(나스닥: PCLN)됐다. 여행을 가는 사람들에게 숙소와 비행기 티켓을 역(逆) 경매 방식으로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실적은 변변치 않았지만 세상을 바꿀 서비스라고 여긴 투자자들은 열광했다.
상장 첫날 이 회사 주가는 공모가의 4배로 뛰었다. 이튿날 뉴욕타임스(NYT)에는 이 회사가 “유나이티드항공, 콘티넨털항공, 노스웨스트항공을 다 합친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글이 실렸다. 그해 TV에서는 끊임없이 배우 윌리엄 섀트너가 출연한 광고가 흘러나왔고 창업자 제이 워커는 이 회사의 ‘당신의 가격을 제시하세요(Name your price)’ 모델이 “비즈니스의 DNA를 재창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투자자들의 관심은 사업모델보다도 기업 가치, 주가 향방에 쏠려 있었다. 1999년 4월 이 회사 주가는 974.25달러였는데 닷컴 거품이 꺼지면서 2000년 12월에는 6.75달러로 급락했다. 프라이스라인은 이후 한동안 닷컴 거품의 붕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회자됐다. 1997년 회사를 설립한 창업자 워커는 그해 말 회사를 떠났다. 현재 이 회사 지분은 티 로위 프라이스(12.14%), 뱅가드그룹(6.19%), 블랙록 기관신탁(3.90%) 등 여러 기관투자가가 분산 소유하고 있다.
창업자 떠나고 M&A 전문가가 CEO로
프라이스라인은 그 후 어떻게 됐을까. 현재 프라이스라인그룹 가치는 700억달러 이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유나이티드항공과 콘티넨털항공이 2010년 합병한 유나이티드 콘티넨털 홀딩스(233억달러)와 노스웨스트항공을 2008년 인수한 델타항공(390억달러)을 합한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 NYT 칼럼이 처음에는 완전히 틀렸지만 뒤늦게 들어맞은 셈이다.
창업자가 떠난 회사를 키운 것은 제프리 보이드라는 인물이었다. 옥스퍼드헬스케어라는 회사에서 법무 자문위원으로 일하다가 프라이스라인의 같은 직책으로 옮겼는데, 두 회사가 코네티컷주 노워크의 같은 빌딩에 입주해 있던 인연으로 일어난 일이다.
그는 인수합병(M&A) 분야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2002년 프라이스라인 최고경영자(CEO)가 된 뒤 다른 인터넷 회사를 줄줄이 사들였다. 숙박업소 예약서비스 회사 아고다(2007년), 렌터카 서비스 회사 트래블지그소(현 렌털카스닷컴·2010년), 여행 검색엔진 카약(2013년 18억달러), 식당 예약서비스 회사 오픈테이블(2014년 26억달러) 등이었다. 지난 7일에도 유럽 예약서비스회사 모몬도그룹을 5억5000만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하는 등 끊임없는 M&A로 외형을 키웠다.
부킹닷컴 인수로 시장 제패
특히 1996년 네덜란드에서 설립된 부킹닷컴의 모회사 부킹스NV를 2005년 7월 1억1000만유로에 인수한 것은 프라이스라인의 위상과 영향력을 급격히 증대시킨 계기였다. 이후 주가도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부킹닷컴 매출(80%)을 포함해 현재 프라이스라인의 매출 중 86%(2014년 기준)는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다.
보이드는 2013년 CEO 자리를 떠났다. 그러나 후임자로 지명된 대런 휴스턴 CEO가 작년 4월 혼외정사 스캔들로 사임하면서 차기 CEO를 물색하는 8개월 동안 ‘내부 CEO’라는 이름으로 잠시 경영에 복귀했다. 작년 12월 중순 글렌 포겔 전략부문장(54)을 CEO로 임명한 뒤 다시 물러났다.
포겔은 부킹닷컴 인수를 주도한 인물이다. 보이드는 “글렌이 주도한 M&A 결과가 그를 설명해준다”며 “글렌은 회사 경영진에서 굉장한 신뢰를 받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에어비앤비·구글과 경쟁해야
프라이스라인의 최근 실적은 좋은 편이다. 2010년대 들어서도 꾸준히 확장을 거듭했다. 2015년 기준 매출은 92억달러, 영업이익은 32억달러, 순이익은 25억달러였다. 전년 대비 각각 9.1%, 영업이익은 6.0%, 순이익은 5.3% 증가한 수치다. 작년 3분기 실적은 순이익은 다소 감소했지만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9% 증가하는 등 여전히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16년 4월 발간된 연간보고서 잠정치는 2015년 강(强)달러 현상에도 불구하고 법인세 및 감가상각 등 차감 전 영업이익(EBITDA)이 37억달러로 2014년(35억달러)보다 증가했음을 강조했다. 이 회사의 2010~2015년 사이 총이익과 조정 EBITDA는 연평균 각각 35%, 33%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회사가 확장되면서 소비자가 가격을 제시하는 당초의 프라이스라인 역경매 사업모델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프라이스라인이 창업 20년 만에 세계 1위 여행·숙박 서비스 산업을 주도하는 회사로 확고히 자리매김한 것을 고려한다면 “이 회사가 비즈니스 DNA를 바꿔놓을 것”이라던 창업자의 호언장담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엔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다. 구글이 여행부문 사업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구상 중이고, 에어비앤비 같은 시장 진입자와도 겯고트는 관계다. 오랜 경쟁자 익스피디아는 물론 중국계 여행서비스 강자인 씨트립도 만만찮은 도전자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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