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과 야권인사들이 갑자기 탄핵의 신속한 인용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이 3월13일 이후로 늦춰지면 상황이 불리해진다는 위기감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헌재가 최근 박 대통령 측이 신청한 증인을 8명이나 허용한 데다 22일까지 변론기일을 잡으면서 2월 중 탄핵선고는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알려진 상황이다. 여기에다 임기 만료로 이정미 재판관이 3월13일 퇴임하면 헌재는 재판관 7인체제로 바뀐다. 탄핵 인용을 위해선 재판관 6명이 찬성해야 하는데 2명만 반대해도 기각된다.
그러나 정치권이 ‘조기 선고’를 넘어 ‘탄핵 인용’을 촉구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했다며 탄핵소추를 결의한 정치권이 헌법상 독립기관인 헌재의 독립성을 심각히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촛불민심’을 운운하며 조기 인용을 압박하는 것은 법질서 자체를 뒤흔드는 중대한 위헌적 행위다. 이와 관련해 정기승 전 대법관, 김평우 전 대한변협 회장 등 원로법조인 9명은 어제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부터 헌재 심판 등 전 과정에 법적 하자가 있다는 주장을 담은 신문광고를 내기도 했다.
헌재는 당연히 법에 따라 사실로만 판단해야 한다. ‘인용’이나 ‘기각’을 압박하는 어떤 세력에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 이는 헌재 내부도 마찬가지다. ‘신속한 결론’을 언급해 구설에 휩싸였던 박한철 전 소장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원칙과 절차대로 심판하는 것만이 선고 후 불어올 후폭풍에서도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길이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