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현진 기자 ] 벼르고 벼르던 금융투자협회가 결국 은행업계에 포문을 열었다. 국내 은행의 경쟁력은 떨어지는데 다른 업권의 업무까지 침식해 들어온다며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증권·자산운용사를 대표하는 금투협이 타업권인 은행을 맹비난하는 것은 그만큼 금융시장 내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정수섭 금투협 기획조정실장은 9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내 금융업은 은행 중심으로 발전해 왔지만 정작 은행의 수익성과 경영효율성은 크게 떨어진다”며 “스스로 생산성을 높이기보다는 펀드 및 보험 판매, 일임업 등 타업권의 업무를 허용해 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투협에 따르면 은행은 국내 금융업계 총자산의 61.3%(2603조원), 자기자본의 46.9%(181조원)를 점한다. 은행 자산은 국내총생산(GDP)의 1.57배로 미국(0.86배)에 비해 상대비중이 훨씬 크다. 경제 규모에 비해 은행 자산이 과대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수익성과 노동생산성은 이와 반대다. 대표적 수익성 지표인 자기자본이익률(ROE)은 은행이 2.08%다. 증권사(6.87%) 생명보험사(5.83%) 손해보험사(9.6%) 자산운용사(12.44%)에 비해 뒤떨어진다. 직원 한 명이 벌어들이는 영업이익 역시 생명보험(41억원) 증권(16억7000만원)보다 낮은 11억4000만원 수준이다. “1992년 평화은행 인가 이후 최근 인터넷전문은행 인가 전까지 시장에 새로 진입한 은행이 없을 정도로 경쟁이 없기 때문”이라고 금투협은 진단했다.
금투협이 이렇게까지 정색하고 나선 것은 은행의 금융투자업 영역 확대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금융위원회가 신탁업법을 제정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금투업계는 신탁업법을 통해 은행이 자산운용업에 진출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고 반발했다.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이 지난 1월 기자간담회에서 신탁업법 제정을 환영하는 발언을 하며 갈등의 불씨가 됐다. 투자자 입장에선 신탁과 펀드가 비슷한 만큼 규제가 까다로운 펀드보다 신탁으로 자금이 몰릴 수 있다. 황영기 금투협회장이 지난 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은행의 신탁업 진출 움직임을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금투업계와 은행업계는 각자 업권의 이익을 놓고 두 차례 결전을 벌인 바 있다. 지난해 초에는 은행의 일임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허용하는 문제로 대립했다. 결국 은행에도 일임형을 허용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하반기에는 증권사의 월급통장 취급으로 논쟁이 붙었지만, 이 역시 초대형 투자은행(IB)에 법인 지급결제 기능이 빠지며 은행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금투협이 “은행이 압도적인 지점망과 영업력을 앞세워 시장의 다양성을 해치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선 이유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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