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모래 '셍기기 해변' 인기…섬 가운데 화산 분화구 위용
발리 지척이지만 힌두 아닌 이슬람 문화권
사삭 빌리지에 가면 원주민 생활상 고스란히
소똥으로 바닥 칠한 전통집…모기가 들어오지 않아
주민들 모두가 친척
마을 사람끼리만 결혼…어길 땐 소 1~2마리 벌금
직물·토기마을 유명…탄중 안 해변 일몰 최적지
북쪽 섬 3개 '길리 삼형제' 가장 아름다운 섬 뽑혀
세계 3대 다이빙 포인트
열대어·산호초 즐비 노을지면 별이 '총총'
인도네시아 하면 떠오르는 여행지는 단연 발리다. 인도네시아를 방문하는 연 30만명 안팎의 한국인 관광객 가운데 절반이 발리를 찾는다. 한국 여행자들에게 인도네시아는 곧 발리인 셈이다. 하지만 눈 밝은 여행자들은 북적이는 발리를 피해 옆동네를 찾는다. 발리에서 비행기로 30분, 페리로 2시간 떨어진 순다(Sunda)열도에 자리한 롬복(Lombok)이다. 롬복은 오래전 상업화된 발리와는 달리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때묻지 않은 삶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다채로운 종교와 문화를 가진 곳
롬복은 생각보다 크다. 제주도의 2.5배 정도 면적에 250만명 정도가 살고 있다.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서쪽에 자리한 셍기기(Senggigi) 해변. 검은 모래 해변이 펼쳐진 곳으로 호텔과 리조트를 비롯해 레스토랑과 숍이 많이 들어서 있어 활기가 넘친다.
섬 한가운데는 해발 3726m의 화산 구눙 린자니(Gunung Rinjani)가 위용을 뽐낸다. 인도네시아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산인데, 가장 최근에는 2015년 11월 분화를 했다. 당시 상공 3㎞까지 화산재가 솟아올라 롬복 공항은 물론이고 이웃 섬 발리 공항까지 폐쇄됐다. 1257년에도 초대형 폭발이 있었다. 이때 산 정상부 500m가 통째로 사라져버렸고 당시 분출된 화산재가 몇 년간 지구 상공을 덮어 ‘작은 빙하기’가 도래했다는 기록도 있다.
롬복은 발리와 지척이지만 여러모로 다르다. 발리가 인도네시아에서도 드물게 힌두교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롬복은 이슬람 문화권에 속한다. 롬복은 19세기 초 발리의 통치를 받기 전까지 마타람 이슬람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주민 대부분이 말레이 계통인 사삭족이다. 롬복에서는 이슬람 문화를 비롯해 발리의 힌두교 문화, 토착신앙 등 다채로운 종교와 문화를 접할 수 있다.
롬복 공항을 빠져나오면 시골스러움과 순박함에 놀라게 된다. 길거리에는 오토바이, 승용차와 함께 여전히 마차가 다닌다. 치도모(Cidomo)라고 부르는 이 마차는 롬복의 가장 대중적인 교통수단으로 롬복 사람들은 이 마차를 우스갯소리로 ‘롬복 페라리’라고도 부른다. 롬복에서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치도모를 승용차 대용으로 한 대씩 가지고 있다고 한다.
원주민의 삶을 느끼다, 사삭 빌리지
롬복 원주민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곳이 사삭 빌리지(Sasak Vilage)다. 사삭족은 롬복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원주민으로 발리인보다는 자바인과 흡사한 외모와 문화를 지니고 있다.
사삭 빌리지에서는 사삭 주민이 실제 거주하는 현장을 둘러보고, 전통의상과 도자기, 악기 등을 손수 제작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함께 체험할 수 있다. 현재 150가구 700여명의 사삭 주민이 대나무로 벽을 세우고 바닥은 소똥으로 칠한 전통집 루마 아닷(Rumah Adat)을 짓고 살고 있다. 바닥은 1주일마다 소똥을 덧대는데 이렇게 하면 모기가 들어오지 않고 먼지가 나지 않는다.
충격적인 사실은 마을에 사는 주민 모두가 친척이라는 것. 사삭족은 오직 마을 사람들끼리만 결혼할 수 있으며 사촌끼리도 결혼이 가능하다고 한다. 만약 마을 바깥 사람과 결혼을 하면 벌금으로 소 1~2마리를 내야 한다.
롬복 중부지역의 끄디리(Kediri)에 있는 토기 마을 바뉴물렉(Banyumulek)도 가볼 만하다. 게라바(gerabah)라고 불리는 전통 질그릇을 만드는 마을이다. 아주 원시적이고 단순한 방법으로 만들어지지만 문양과 색깔이 무척 화려한 것이 특징. 이 마을에서는 세 집에 한 집꼴로 게라바를 만들며 성인 인구의 80%가 토기 생산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있다. 토기는 모두 수공업 형태로 사람이 직접 빚고 말린 뒤 색을 입히고 문양을 새겨 판매하는데, 관광객도 토기 제작과정에 직접 참여해 볼 수 있다.
수카라레(Sukarare) 마을은 전통 직물로 유명하다. 150여 가족이 모여 사는데, 대부분의 집에서 전통 베틀을 이용해 천을 짠다. 다양한 색의 실과 패턴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천은 화려한 문양을 자랑한다. 롬복에서는 결혼식 파티 때 신부가 신랑을 위해 자신이 직접 짠 천을 선물해 주는 것이 전통으로 어른들은 여자아이들에게 직물을 짤 수 없다면 시집을 갈 수 없다라는 얘기를 할 정도다. 보통 혼자서 1.2m×2m 폭의 직물을 만드는데 대략 1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정성이 녹아 있는지 알 수 있다.
롬복 남쪽에는 근사한 해변이 많다. 특히 탄중 안(Tanjung Aan)은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꼽히는 곳이다. 해변 서쪽에 자리한 낮은 언덕에 올라서면 절벽에 둘러싸인 원형의 만이 내려다보이는데, 이곳은 인도네시아 최고의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물속 또한 아름답고 신기하다. 스노클링을 하며 여러 가지 색깔의 물고기와 산호를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쿠타(Kuta) 해변은 발리의 쿠타 비치와 이름은 같지만 분위기는 많이 다르다. 쿠타 해변은 세게르(Seger) 해변과 이어지는데 롬복을 찾은 서핑 마니아들에게 성지와 같은 곳이다. 파도가 서핑을 하기에 적당해 아침부터 밤까지 세계 각국의 서퍼들로 붐빈다.
천국의 또 다른 이름 길리
롬복 북서쪽에 작은 섬 3개가 나란히 떠 있다. 흔리 길리 섬이라고 부르는 길리 트라왕안(Gili Trawangan), 길리 메노(Meno), 길리 에이르(Air)가 주인공이다. 길리 삼형제로 구성된 길리군도는 ‘지구 상에 현존하는 가장 아름다운 섬 베스트 3’(영국 BBC 방송), ‘세계 10대 최고의 여행지’(론리 플래닛) 등에 선정되기도 했을 만큼 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원래 ‘길리’는 ‘작은 섬’을 뜻하는 롬복말. 인도네시아 지도를 보면 작은 섬들은 대부분 길리라는 이름으로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세 개의 섬 가운데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길리 트라왕안이다. 롬복 본섬 북서부에 있는 방살(Bangsal) 항구에서 배를 타고 30~40분만 가면 도착한다. 면적은 15㎢로, 여의도보다 약 5배 크다.
배가 해변에 닿을 무렵, 배에 탄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탄성을 쏟아낸다. 이 다정한 섬은 푸른 하늘과 산호초가 부서져 만들어진 눈부신 해변, 해변에 게으르게 잎사귀를 늘어뜨린 야자수로 이뤄져 있다. 여행자들은 이 섬에 오래오래 머물며 느린 시간을 즐긴다. 에메랄드빛 바다에서는 스노클링 고글을 쓴 여행객들이 열심히 오리발을 젓고 있다. 바다 쪽에는 알록달록한 선베드가 깔린 카페가 줄지어 있고, 수영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쓴 여행객들이 책을 읽거나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다. 그들은 야자수 그늘에서 맥주를 마시며 기타를 튕기고 노래를 부르며 아주 사소한 농담에도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삼판이라는 전통배를 타고 낚시를 나가는 이들도 있다.
해변에서 마주치는 이들 대부분은 유럽과 호주 여행객들이다. 1980년대부터 서양 여행자들이 이 섬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마약 때문이었다. 아무 제지 없이 마약을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환각 성분이 포함된 버섯을 쉽게 구할 수 있어 몰려들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단속을 강력하게 해 마약을 할 수는 없다. 요즘 들어서는 한국인 신혼부부와 휴양객들도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경찰, 개, 자동차, 담수가 없는 곳
길리에는 없는 것이 많다. 자동차나 오토바이 같은 모터를 단 차량도 그중 하나다. 가까운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를 탄다. 마차를 타도 된다. 경찰도 없다. 경찰 대신 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치안을 맡는다. 개도 없다. 대신 고양이가 있다. 길리 섬에는 사람이 살기 이전부터 고양이들로 넘쳐났다. 담수도 없어 식당이나 숙소 화장실에서 수도꼭지를 돌리면 짭조름한 물이 나온다. 지하수에도 해수가 섞여 있다.
길리는 세계 3대 다이빙 포인트로 꼽히는 곳이다. 바닷속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각양각색의 열대어와 산호초를 만난다. 1m에 달하는 거북이, 죽은 듯 깔려 있는 바다뱀도 볼 수 있다. 생수병에 물고기 밥을 넣어가면 수십 마리의 열대어가 몸 주변을 감싸는 경험도 할 수 있다. 굳이 스쿠버다이빙이 아니더라도 스노클링만으로 형형색색의 물고기와 신비한 산호초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길리의 바다다. 바닷가 한편에 자리한 스노클링 장비 대여점에서 고글과 오리발만 빌려 50m만 헤엄쳐나가면 화려한 수중세계를 만끽할 수 있다. 굳이 배를 타고 나가는 스노클링 프로그램을 이용할 필요도 없다.
섬은 동쪽 해안 부분만 개발돼 식당과 카페, 게스트 하우스가 들어서 있다. 거리 양옆으로 자리한 가게에서는 현지인들이 과일과 커피, 채소를 판다. 나시고렝이며 미고렝 등 인도네시아 전통 음식도 실컷 맛볼 수 있다.
저녁이면 보랏빛 노을이 수평선 너머에서 번져와 섬을 온통 물들인다. 길리가 가장 아름다워지는 시간이다. 물결이 일 때마다 세상은 보랏빛으로 넘실댄다. 노을이 물러가면 별이 뜨고 섬은 조용해진다. 어부들과 나무, 선인장들도 깊은 잠에 빠진다. 긴 하루를 보내고 밤바다를 보며 홀로 앉아 파도소리를 들으면 하늘 위의 천사가 앉아 커다란 눈을 글썽이며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길리는 내 안의 천사를 만날 수 있는 그런 섬이다.
롬복=글·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ssoochoi@naver.com
여행정보
한국에서 롬복으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보통 자카르타를 경유한다. 발리에서 국내선 항공편을 타거나 페리를 타고 롬복으로 가는 방법도 있다. 국내선을 타고 자카르타에서는 2시간, 발리에서는 20~30분이면 닿는다. 롬복에서는 셍기기 해변에 숙소를 잡는 게 좋다. 노보텔 롬복(novotellombok.com)은 77개의 리조트룸과 25개의 빌라 등 총 102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다.
길리군도에 가기 위해서는 우선 발리 국제공항에서 페리 터미널(4곳)로 이동해 이 터미널에서 길리군도로 가는 페리를 타면 된다. 페리 티켓을 현지 여행사에서 구입하면 터미널에서 숙소까지 픽업을 해준다. 길리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는 원화로 하루에 2만~3만원 정도다. 해변가에 저렴한 레스토랑과 카페가 많다. 자전거를 빌려 타고 섬을 돌아볼 수도 있다. 자전거를 빌리는 데는 5000원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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